모두가 사는 길

모두가 사는 길

[ 여전도회 ]

백성희 목사
2014년 01월 15일(수) 13:23

우리 시설에는 대기업에서 퇴직하신 후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직원이 몇 분 계신다. 그분들은 치매와 중풍, 노인성 질환으로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하는 어르신들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목욕을 시키며 옷을 입히는 등, 손과 발이 되어 섬김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50대의 나이에 퇴직해 자유롭고 편안한 여생을 즐길 수 있지만 가장 가치 있고 보람된 삶을 추구하며 아름답게 섬기는 모습을 보면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이며 아름답게 사는 삶일까? 한번 뿐인 인생을 가장 아름답고 가치있게 살아야 할 텐데, 그 최상의 가치와 보람된 삶은 어떤 것일까?
 
복음서의 예수님이 공생애 가운데 함께 했던 사람들, 그들이야 말로 예수께서 가장 마음이 가는 사람들이며 사랑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과 함께 하며 그들을 위해 섬기며 봉사하는 삶을 살아갈 때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리라 믿는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봉사라는 말을 꺼내면 굉장히 부담스러워 하는 점이다. 시설에서 그들과 함께 생활을 해 보면 봉사는 결코 거창하거나 부담스러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외롭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주는 것, 작은 관심, 이것이 더 없이 큰 봉사이다.
 
예수님은 가장 낮은 자리까지 오셔서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아파하는 자들과 함께 아파하셨다. 그 뿐만 아니라 지극히 작은 자들과 자신을 동격의 위치에 놓고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마25:40)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실제로 돈, 재물이 없어서 봉사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사랑과 관심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이 없어서 목마르고 배고픈 사람보다 사랑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있다. 이 사람들에게 더 절실한 것은 관심과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리고 봉사는 다른 사람을 위해 한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나 자신을 위한 것이며, 내가 사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썬다싱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어느 추운 겨울날, 두 사람이 눈보라가 몰아치는 하얀 벌판을 걸어가고 있었다. 추위로 인해 이들은 몹시 지쳐있었고 마을에 빨리 도착해야만 살 수 있기에 종종걸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한참을 걷는데 길 가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한 노인을 발견하게 된다. 썬다싱이 말했다. "우리 이 사람을 데리고 갑시다. 그냥 두면 이 추위에 얼어 죽고 말 것입니다." 그러자 친구는 "안 됩니다. 빨리 마을에 도착해야 하는데 저 사람을 데려 가면 우리마저 죽게 됩니다." 두 사람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고 친구는 화를 내며 혼자 가 버렸다. 썬다싱은 하는 수 없이 쓰러진 노인을 업고 걷기 시작했다. 온 몸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 내렸다. 더운 기운 때문인지 노인은 점차 기운을 되찾기 시작했고 한참을 걸어서 마을의 불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마을 입구에서 꽁꽁 언채 흰 눈에 뒤덮인 물체를 발견하였고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먼저 갔던 바로 그 친구가 싸늘한 시체로 누워있었던 것이다.
 
혼자 살겠다고 가버린 사람은 동사(凍死)했고, 길에 쓰러진 불쌍한 노인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등에 엎고 힘들게 길을 걸어갔던 썬다싱은 자신뿐 아니라 불쌍한 노인까지 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선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해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지나친 경쟁사회에서 살다보니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보다 남을 밟고 올라서야 살 수 있다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어려운 때일수록 함께 살려고 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혼자 살려고 하는 것은 결국 자멸하는 것이며 함께 사는 봉사와 섬김의 삶은 모두가 사는 길이다.

백성희 목사 / 경북작은자의집 원장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