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계산법은 달랐다

예수님의 계산법은 달랐다

[ 연재 ] 바이블&Money

김용수 목사
2014년 01월 08일(수) 16:46

생산성보다 '사람'이 중요
사회적 경제논리 경계해야
 
성경의 여러 상황들 가운데 계속해서 아쉬운 마음을 갖게 하는 한 장면이 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나왔다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는 그만 실망한 채 돌아가 버린 사건이다. "네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주님은 왜 하필 이 말씀으로 문턱을 높이셔서 능력 있는 청년이 그만 돌아서게 하신 것일까.

주님은 그가 진정한 행복을 맛보길 원하셨다. 재산을 선한 일에 사용함으로 진정한 기쁨을 맛보게 하시려고 사랑어린 충고를 하셨던 것이다. 잠시 후에 사라질 재산에 애착을 갖기 보다는 영원히 가치 있는 일을 추구하도록 길을 열어주셨지만 그는 안타깝게도 예수님의 선한 의도를 알지 못한 채 자신이 선택한 익숙한 길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계시록에 보면 주님이 서머나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각각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계 2:9)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계 3:17) 무슨 말씀인가. 한 마디로 주님이 보는 것은 사람들이 보는 것과 다르며 지금 사람들은 자신의 실상을 보지 못한 채 엉뚱한 것을 추구하고 있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계산법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 그의 계산법은 한 마디로 십자가 계산법이다. 비움으로써 채워지는 길, 줌으로써 얻는 길, 낮아짐으로써 높아지는 길, 모욕을 당하고 손해를 봄으로써 영광을 얻는 길, 죽음으로써 살게 되는 길, 이 길이 바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삶의 방식이요 주님의 계산법이다. 과연 우리는 이것을 알고 있으며 이대로 행하고 있는가.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포도원 주인이 일한 사람들에게 삯을 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주인은 이상하게도 늦게 와서 겨우 한 시간 일한 사람에게나 아침 일찍 와서 하루 종일 일한 사람에게나 동일한 임금을 주었다. 이 얼마나 불공평한 일인가. 당연히 일찍 온 자들이 항의를 했다. 그러자 주인이 말했다. "나중 온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마 20:14)

주인에게 중요한 것은 일의 능률이 아니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생산성이 아니었다. 그는 적은 돈으로 많은 결과물을 만드는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가 관심을 둔 것은 사람이었다. 생명이었다. 아빠가 들고 들어올 그 빵 한 조각을 종일 기다리며 고픈 배를 움켜쥐고 있을 그 자녀들에게 그의 마음은 가 있었다. 그에게는 사람이 재산이었다.

그러기에 겨우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은 과부가 사람들 보기에 많은 돈을 넣은 부자들보다 훨씬 더 많이 헌금한 것으로 보인 것이다. 한 마리 잃은 양을 찾기 위해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정처 없이 길을 나설 수 있는 것이다. 생명을 위해 얼마든지 낭비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돈으로 통하는 시대이다. 교회마저 경제 논리에 휘둘리고, 도시락 하나로 오천 명을 어떻게 먹일 수 있는지 물었던 제자처럼 돈이 있어야 뭐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과연 예수님 보시기에 부요한 자인가, 우리 삶의 목표는 바른 것인가, 우리는 정말 주님처럼 십자가의 계산법을 가지고 영원히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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