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교회와 사회 변화의 원동력

여성, 교회와 사회 변화의 원동력

[ 여전도회 ]

홍인종 교수
2013년 08월 21일(수) 09:09

여전도회전국연합회 계속교육원 창립 30주년을 맞아 지난 5월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하고 2014년 봄 학기부터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팀티칭으로 강의를 시작한다. 이에 본보에서는 지난 5월 발표된 심포지엄 발제문을 연재한다.
 
들어가는 말
 
지난 110여 년간 여전도회가 한국 교회와 사회, 세계 선교와 연합활동, 여성과 가정에 미친 영향에 비해서 그 운동과 활약상에 걸맞는 신학적 정리는 미미했던 것이 사실이다. 차제에 여전도회 계속교육원 30주년을 맞으면서 여전도회를 이끌어온 신학적 동력은 무엇이며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여전도회의 신학화 작업은 매우 뜻 깊은 일이다. 본 글에서는 '여전도회 100년사'(이연옥. 2008), '여전도회학'(이연옥, 1993), '장로교여성사'(주선애, 1981)와 이연옥의 설교와 강의를 정리한 '교회여성 지도자'(1권~8권, 1993~2010), 그리고 이연옥의 자서전격인 '향유 가득한 옥합: 여성지도자, 이연옥'(임희국, 2011) 등을 중심으로 지나온 한국교회 여전도회 운동과 신학적 관점에서 가정의 변화를 살펴보고, 다가오는 시대에 변화하는 가족에 대해 여전도회가 지향해야할 신학적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또한 여전도회 운동이 한국 가정의 변화에 어떤 역할을 감당해 왔으며, 앞으로의 가족 변화에 대해서 어떻게 신학적 운동으로 교회와 한국사회에 방향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지를 모색하려고 한다.
 
I. 한국 가정의 변화와 여전도회의 활동
 
A. 여전도회 활동의 회고
 
한국교회와 함께 성장한 여전도회 역사를 정리하면 크게 조선예수교 장로회 여전도회 개교회 조직 (1898~1927), 장로교 여성운동의 전국조직화 (1928~1945), 조국해방과 여전도회 재건 (1945~1969), 교회의 민주화와 여성의 지도력 확산 (1970~1988), 100주년을 맞는 여전도회 (1988~1989), 그리고 21세기를 변화시키는 선교여성 운동 (1999 이후 현재)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지나온 한국 기독교 역사 속에 각 단계별로 가족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는 없지만 여전도회 운동의 핵심 단어 (키워드)는 생명의 모성이었고, 그 생명을 살리는 신앙은 교육과 선교와 봉사를 통해서 구현되었다.
 
여전도회 선배들은 여성의 선구자로 사회의 단위인 가정을 기독교 가정으로 변화시켜 사회정의를 실현하여 기독교 문화를 형성하였다. 이것은 계승되어 시대마다 여전도회원들이 앞장서서 복음으로 민주사회 건설에 이바지하였다. 교회 여성들은 민족 수난사에 동참하여 조국 독립운동과 모든 여성들에게 애국정신을 넣어주는 일로 생명을 바치기도 했다. 선배들의 강한 여성의식은 마침내 한국 교회 당회에 남녀 당회원이 함께 봉사할 수 있게 하였고, 이러한 민주적이고 조화있는 교회 정서를 갖도록 우리는 기도로 다짐해야 한다.
 
여전도회와 연합회가 국내외에서 영향력을 확장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선교, 교육, 봉사를 모토로 헌신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교, 교육, 봉사를 위한 연합과 희생의 여성들이 한국교회와 사회의 변혁에 중심에 있었고, 그 원동력은 사회의 기초 단위인 가정을 기독교 가정으로 변화시켜 기독교 문화를 형성하는 것에 주력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성 해방과 평등, 사회 정의와 참여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분단국가, 보리고개와 산업화, 그리고 압축 경제적 성장과 민주화, 세계화의 역사적 과정을 지나오면서 계속적인 여성운동의 동력이 되었다. 여전도회 연합회, 여성 운동의 기초적 신학은 선교, 교육, 봉사에서 드러나듯이 생명을 구원하는 선교, 생명력을 확장하는 교육, 생명을 생명답게 양육하는 봉사로서 생명의 신학이라 볼 수 있다.
 
B. 여전도회 운동의 기초 신학: 생명의 신학으로서의 모성애 신학
 
역사적으로 보면 소외된 사람,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힘없는 사람, 고통받고 차별받는 사람들을 위한 복음, 즉 생명의 복음의 첫 번째 대상은 아이와 여성이었다. 따라서 구약에서는 대표적으로 "과부와 고아"(출 22:22)를 돌보라 말씀한다. 신약에서는 좀 더 넓은 의미로 예수님께서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말씀하셨고,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죄인과 세리"(마 9:10; 눅 5:10)의 친구라 비난하였다, 반면 예수님은 "세리들과 창녀들"(마 21:31~32)이 먼저 복음을 받아드렸다며 종교 위선자들을 질책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한국교회 여성들은 해방되고, 회복되어야 할 선교와 교육과 봉사의 대상이었음에도 동시에 선교와 교육과 봉사의 주체로 한국교회에 중추적 역할을 감당하였다. 무엇이 그것을 가능케 하였을까? 남아있는 기록들 가운데 명확하게 신학적 용어가 사용된 것은 아니지만 90 평생을 여전도회와 함께한 이연옥의 신학사상을 요약하면서 영남신학대학교의 채승희는 "모성애 신학"(임희국. 향유 가득한 옥합. 2011. 293~386)이라고 명명하였다. 물론 이연옥 개인이 여전도회 120년 역사의 신학을 대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주도적으로 100년의 역사를 정리하고, 지난 수십년간 여전도회 연합회에서 신학적 교육과 집필 등으로 함께 성장해 왔다는 점에서 모성애의 신학이 여전도회의 핵심 신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옥은 (이연옥)의 사역은 한마디로 '모성애'신학과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모성애 신학은 그녀의 전 삶과 사상을 집약하고 있다. 여성으로 한국 교회에서 과거의 역경을 이겨내고 현재를 열정적으로 살며, 그리고 미래 세대에 물려줄 희망찬 유산을 꿈꿀 때 옥은은 언제나 한결같이 '어머니의 마음'을 외쳐 왔다.
 
II. 변화하는 한국 가족 형태와 여전도회가 추구해야할 신학적 과제

(이 장은 필자의 '패밀리 혼돈의 시대: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나?'(목회와 신학/두란노/2003년 12월호/통권 174호 일부 발췌 수정 보완)
 
100년이 넘는 한국 기독교 역사 속에 한국 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겪어왔고, 그 중 가정의 변화에 중추적 역할을 기독교 여성들과 여전도회가 감당해 왔다. 그 변화에는 여성의 해방과 치유, 차별을 철폐하고 평등사회와 화해의 가정을 이루는 순기능적 역할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가장 오래된 인간의 제도이고 기본적인 사회집단이며, 하나님께서 결혼을 통해 조직하신 가정과 가족 개념이 크게 위협을 받고 있다. 전통적인 가족이 해체되면서 새로운 가족 형태가 등장하고 있지만 아직 그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하는지 불안해 하고 있다.
 
A. 흔들리는 가족의 요인들
 
역사적으로 보면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그리고 후기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핵가족화를 촉진시켰다. 핵가족화 되어짐에 따라 가족 구조의 변화와 가족 기능의 약화를 초래했고,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가족주의적 가치관을 대치하게 되었다. 물론 가족 중심적 가치관이 성경적 가치관도 아니며 대가족적 제도가 유일한 성경적 가족 제도도 아니다. 그러나 핵가족화의 가속화와 가족 형태의 변화는 후기 근대사회의 가족 제도나 부모 권위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개인의 선택과 자유, 자율성과 다양성을 강조하는 상대주의적 사고와 물질주의 가치관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즉 가족 붕괴 현상은 생명을 경시하는 물질주의, 개인의 행복 추구와 삶의 질을 강조하는 자기 중심적 사랑, 자신의 선택과 판단을 우선시 하는 상대주의 가치관, 그리고 이러한 변화에 따라 전통적 가족 역할의 혼란에 뿌리를 두고 있다.
 
1. 생명을 경시하는 "물질주의"
 
성경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딤전 6:10)가 되며, 말세의 고통받는 때에 현상 중에 하나는 사람들이 "돈을 사랑"(딤후 3:2)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즉 가족 붕괴 현상 뒤에는 "돈을 사랑함"이 있다. 사실 부부관계나 가족관계에 '경제력'은 그 자체로서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경제력이 높을수록 부부갈등에도 불구하고 결혼 기간이 길어지고, 경제력이 낮을수록 이혼여성이 재혼에 도달하는 기간이 짧아지는 것만으로도 돈의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이 지나쳐서 경제활동 시간의 증가와 더 높은 경제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때론 도덕이나 윤리를 무시할 수도 있다는 물질주의 가치관은 가족 관계나 가족 휴가, 오락 생활에 돈이 필수적이라고 인식하게 만들었다. 돈이 가족주의 가치나 윤리 보다 앞서게 되면 결국 경제력이 없으면 불행하게 느끼고, 그것은 가족 제도로부터 일탈을 더욱 쉽도록 조장할 것이다.
 
2. 개인의 행복권이 우선인 "자기 중심적 사랑"
 
'돈'이 가족파괴의 한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배금주의나 황금만능주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있어왔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족 살해 사건 뒤에는 남편의 가정폭력이나 내연녀와 새살림을 차리기 위해, 오래된 가족간의 갈등과 불화 등 가족관계의 단절이 먼저 있었다. 그리고 고통을 주는 그 가족을 없애므로 진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신념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만의 더 나은 삶과 쾌락을 위해서는 가족을 제거하는 것 까지 서슴지 않는 것이다. 성경은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딤후 3:1~2) 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은 인간의 핵심 문제는 자기만의 유익을 구하는 자기 중심적 자기 사랑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순서적으로 자기 사랑 때문에 돈을 사랑하는 것이 따라온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3. 상대주의적 가치관: 자신의 선택과 판단이 중요 가치
 
후기 근대 사회의 특징은 상대주의적 가치관이다. 상대주의는 보편 타당한 도덕적 규범이나 윤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절대성이나 권위를 부정하고, 가족 제도나 가족주의를 전 근대적 가치 체계로 본다. 신앙에 있어서도 절대자이신 하나님 보다는 종교 다원주의를 지지한다. "나에게 옳은 것이 너에게 옳은 것이 아니듯이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에게 옳은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상대방을 인정하고 있지만 동시에 개인의 선택이 어떤 기준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된다. 이러한 상대주의적 가치관은 이전의 가족 제도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지게 한다. 남녀간에 애정과 결혼에 대해 동성애와 동성 결혼, 결혼 전 순결에 대해 동거 후 결혼, 일부일처제에 대해 이혼과 재혼, 생물학적 성에 대해 성정체성과 성전환(transgender) 등도 또 하나의 가족 형태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부모와 자녀관계, 생물학적 성에 근거한 남편과 아내의 결합이 유일한 기준으로서의 결혼과 가족의 필수적 요소가 되어야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4. 전통적 역할의 혼란
 
부부 및 가족 역할의 변화는 새로운 역할 정립의 지침과 모델의 부재로 인해 가족 구성원들로 하여금 역할 혼란을 겪게 하였다. 특별히 가정에서의 여성 지위 변화가 가족 역할의 변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 왜냐하면 여성 교육이 높아지면서 고용 기회가 많아지고 경제활동 참여가 확대됨에 따라 남성이 주로 경제활동을 하던 구조에서 맞벌이 부부 구조로 변화해가기 때문이다. 아내가 경제활동에 참여할수록 남편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낮아지고, 이것은 아내의 가족내 위상의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전통적 가족 구조하에서 가부장적이며 남성 지배적 부부 관계에서 점차 부부 평등을 추구하는 관계로 바뀌고 있다. 또한 가족들은 부부가 가사일을 균등하게 분담하여야 한다는데 동의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부부간에 역할을 재조정하면서 갈등을 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별거와 이혼 등이 증가하게 되었다. 미래의 가정은 여성의 사회, 경제적 활동시간이 계속적으로 증가할 것이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자녀 양육이나 가족의 정서적 유대 기능이 점점 더 약화될 것이다. 여성은 경제적 참여에 대한 부담이, 남성에게는 가사일과 자녀양육에 대한 부담이 늘게 되고, 이것은 독신 생활, 초혼 연령의 상승, 자발적 출산 금지, 결혼이외 동거 등을 대안으로 택할 가능성을 높게 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가족 유대감과 응집력의 약화로 이어져서 부모로서의 책임의식이나 부부로서의 헌신, 자녀로서의 의무에서 해방시키는 대신 결국은 이혼과 별거의 악순환으로 연결될 것이다.  한국의 압축 경제성장의 이면에는 생명경시 물질주의, 개인행복만 추구하는 자기중심성, 자신의 선택과 가치가 최우선 판단기준, 가족역할에 대한 혼란 등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러한 가족의 친밀감과 유대감의 와해는 저출산, 낙태, 자살이라는 생명의 상실과 한국 미래에 대한 치명적인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 교회와 가정, 여성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B. 모성애 신학에서 살림의 신학으로
 
한국 가족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고, 또한 모성애를 강조하는 것을 가부장적 잔재로 여기거나, 협의적 역할로 모성적 (여성에게만 국한하는 듯한) 여성을 보며, 오히려 여성성을 억압한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였다. 여성에게 여성적이기 만을 요구하는 것은 여성들을 무기력하게 만들 위험성이 있다. 왜냐하면 남성들이 정의하는 방식으로 여성들은 일을 해야 하고 이것은 어떻게 해도 이길 수 없는 상황 (no~win situation)으로 이끌 것이고, 남성들은 여성의 역할을 어머니, 아내, 어린이, 또는 성적인 파트너 (partner)로 주로 보는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폴 투르니에는 고대 이래로 남성이 여자를 지배하고 객관성 (사물의 과학 기술) 및 힘과 같은 남성적인 원리가 강조되던 역사에서 인격 감각 (여성적인 원리)에 관심을 돌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제자리를 찾아가도록 하는 것이 여성의 사명이라고 언급한다.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여성적 원리들을 회복해야 하고 그것을 찾아가도록 하는 것이 여성의 사명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일이 결코 쉽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C. '살림'의 성삼위 하나님
 
기독교는 '살림'과 분리할 수 없는 연관성을 갖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셔서 인간을 살게 하셨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죄로 죽을 수 밖에 없게 된 인간을 죽음으로 부터 살려내셨다. 유혹 많은 세상에서 절망과 낙심, 관계파괴와 우울함, 외로움 등으로 자기 파괴와 파멸로 가는 인간들을 회복시키고 살리기 위해서 보혜사 성령님께서 인간과 함께 하시며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생명을 잉태케 하시는 창조주 성부 하나님은 살림의 아버지 하나님이시고, 죽은 생명을 살아나게 하시는 성자 하나님은 살림의 성자 예수님이시며, 날마다의 삶에서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회복케) 하시는 성령 하나님은 살림(살이)의 성령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성삼위 하나님은 '살림'의 하나님이시며 기독교는 죽은 자를 살리고, 산 자를 더 풍성히 생명을 누리게 하는 살림의 종교이며 신앙이다.
 
D. 가정을 살리는 살림의 신학에 기초한 여전도회 연합회의 동력화
 
가정의 변화에 따라 흔들리는 가족 구성원들과 그 가정을 살리는 살림의 신학은 세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가족 구성원을 살리는 신학으로부터 먼저 가정을 살리고 (하나님의 형상회복의 교육살림), 그 가정이 살아남으로 교회를 살리는 신학이 되고 (자신의 자아 정체성과 존중을 배우는 섬김과 봉사 살림), 가정과 교회가 살아날 때에  세상을 살리는 신학으로서의 선교 살림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해 가기 위해서는 살림의 신학을 동력화 해야한다.
 
1. 선교하는 살림의 신학에 기초해서 찾아가는 역할을 회복해야 한다
2. 봉사하는 살림의 신학에 기초하여 돌봄을 통해 변화를 창조해야한다
3. 교육하는 살림의 신학에 기초하여 생명 재창조 운동을 확산해야 한다
 
나가는 말 : 모성애 신학에서 생명 창조와 보존의 살림의 신학으로
 
모성애 신학에서 생명 창조와 보존의 살림의 신학으로 전환은 시대적인 것이다. 여전도회는 함께 모이는 연합 운동 뿐 아니라 교회와 개인을 찾아가 돌봄을 통하여 예수님의 복음의 능력으로 거듭난, 변화된 생명을 만들어내는 '살림의 운동 기수'이며 '새생명 창조회사'가 되어야 한다. 이것을 상실하면 교회도 여전도회 연합회도 그 능력도, 그 존재 의의도 잃어버리게 된다. 여전도회 연합회 초대 총무인 김성무는 황해도 재령에서 만삭의 몸으로 3ㆍ1 운동에 참여하여 체포되었다가 22일 만에 석방되었다. 이듬해 3월 1일 또 다시 고향 선청에서 만세운동 1주기를 기념하여 예배를 드리고 만세 운동을 벌이다가 또 다시 투옥되었고, 젖먹이 아이와 함께 5개월간을 복역을 하였다. 그녀는 신의주 감옥에 있을 때 식사배급을 받기 위해 일본말로 점호를 못해서 매맞는 노인을 보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것은 힘이 없어 나라를 빼앗긴 것이라며 "이제부터 이 땅의 여성들을 바르게 가르치고 힘을 기르게 하여 저런 치욕을 다시는 겪게 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살았다는 일화가 전해져 온다.
 
그녀는 남녀 차별과 가부장제가 확연하던 일제 강점기 때에 임신한 채로 만세운동을 한 독한 여자가 아니다. 그녀는 기독교 교육을 받고, 교회에서 훈련을 받아 그 가르침대로 교회와 국가를 마음에 품으면서도, 자신의 아이 양육을 포기하지 않은, 당시 여전도회의 모성애 신학의 일면을 보여준다. 또한 그녀는 감옥에서 학대받는 노인을 보며 여성들을 바로 가르쳐서 바로 세워져야 개인의 치욕과 가정과 국가의 고통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외쳤다. 그것은 살림의 여성 교육이 개인과 가정과 국가를 살린다는 믿음의 표현이다.
 
가족의 패러다임은 계속 변할 것이고 다양하고 새로운 가족 형태가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을 외면하거나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살림의 신학에 기초한 선교, 봉사, 교육을 통하여 "능력 부여적 존재"로 준비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시 127:1) 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여호와께서 살리지 아니하시면 살리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로 의역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살림의 성삼위 하나님께서 살리시기를 원하기 때문에 살림의 사명을 부여받은 여전도회 연합회의 살림의 수고 (선교, 봉사, 교육)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홍인종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목회상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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