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여성, 민족과 함께 울고 웃었다

선교여성, 민족과 함께 울고 웃었다

[ 여전도회 ]

장창일 기자 jangci@pckworld.com
2013년 02월 25일(월) 11:34
활발한 사회 참여 통해 어느덧 역사의 주인공으로
여성들 기도와 섬김이 국가와 교회 행복의 원동력

   
 
"대한독립 만세"가 일제히 터져 나왔던 3ㆍ1 만세운동의 열기가 지금도 한반도 구석구석에 가득한 듯 하다.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통렬한 반성을 하기는 커녕 독도에 대한 망언을 또 다시 내뱉으면서 우리 민족, 특히 여성들이 꿈꿔왔던 독립과 자유에 대한 열망을 비롯해서 여권 신장과 환경보호, 탈북자 인권 보호에 이르기까지, 3ㆍ1절을 지나면서 선교여성들이 우리 역사와 함께 해 왔던 그 여정들을 되집어 본다.
 
사실 여전도회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수난사로 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1898년 평양 널다리공 교회에서 이신행, 신반석, 김정선 씨 등 63명의 여성도들이 참여한 가운데 조직된 여전도회는 이후 1928년 9월 9일 대구 신정교회에서 개최된 교단 총회에서 공식 승인된 이후 캐나다 선교사인 이루이시를 초대회장으로 여전도회 전국연합회의 전신인 조선예수교장로회 부인 전도회를 창립했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일제의 수탈 속에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이런 아픔의 역사는 교회에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신사참배를 거부한 숱한 교회 지도자들과 교인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자유로운 예배와 복음전도 활동이 원천적으로 봉쇄됐던 것도 모두 일제시대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난세는 영웅을 낳는다고 했던가. 여전도회도 당시 민족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친 김미리아 여사를 배출한다.
 
1932년~1938년까지 여전도회 전국연합회 회장(7대~10대)을 역임한 김마리아 여사는 민족의 자주독립과 여성의 자유와 평등을 선도적으로 주창했던 위대한 애국지사이자 여성 지도자였다. 김마리아 여사는 일본 동경 유학 시절 2ㆍ8 독립선언을 주동했으며, 3ㆍ1 만세운동 당시에는 모교인 정신여학교에서 비밀리에 결성된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으로 활약하며 항일독립투쟁에 나서는 등 여성 지도자로서 독립을 위해 자신을 바쳤다. 2ㆍ8 독립선언 직후에 김마리아 여사가 당시 일본 유학생들이 작성했던 '독립선언서' 필사본 10여 장을 국내로 비밀리에 반입했던 일은 독립운동사에서도 유명한 일화다. 하지만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수감됐던 김마리아 여사는 일경의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투병하다 53세가 되던 해 짧은 생을 마치고 말았다.
 
여성으로서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김마리아 여사는 당시 도산 안창호 선생 등 수 많은 독립투사들과 교류하며 대한의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 했다. 지난 2003년 나온 '나는 대한의 독립과 결혼하였다'(박용옥 著)에서는 김마리아 여사와 도산 안창호 선생이 함께 찍은 사진이 공개되기도 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마리아 여사의 공로를 인정한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민족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김마리아 여사의 올곧은 정신은 지금까지도 여전도회에 이어지고 있다. 여전도회는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민족이 나아갈 길을 찾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여성들의 의식개혁과 지도력 증대를 위한 다각도의 활동도 이어오고 있다. 이미 1983년 여성 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계속교육원을 개설했으며, 1990년에는 교회여성의 잠재능력개발과 여성평등을 위한 연구를 위해 한국교회여성연구소도 개설했다. 이듬해인 1991년엔 통일교육과 평화의 집 건립을 위해 민족통일선교정책 연구소를 설립하고 지금까지 통일교육에 매진하고 있다.
 
개정 사립학교법 재개정이 교계는 물론이고 사회에서도 큰 관심사로 떠올랐을 때 선교여성들은 이를 좌시하지 않고 행동에 나섰다. 2007년 2월 22일 개정 사립학교법 재개정을 위한 한국교회 연합기도회에서 여전도회 전국연합회 사무처장 김희원 장로가 선교여성들 중에서는 처음으로 삭발을 통해 개정 사립학교법 재개정을 위한 선교여성들의 의지를 대변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같은 해 3월 5일 열린 여전도회 전국연합회 65연합회 주관, 개정사립학교법 재개정을 위한 특별기도회에서 모두 15명의 선교여성(이숙자 홍기숙 권복주 정순복 민경자 김희진 조경화 윤응현 강미경 문은진 박복순 최기선 이승재 강창복 심성순)들이 삭발에 동참했다.
 
2009년 7월부터는 도시광산화 환경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폐휴대폰과 폐가전제품 안에 있는 고가의 자원을 회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이 사업을 통해 환경을 보호하고 외화의 유출을 조금이라도 줄이겠다는 것이 바로 선교여성들이 이 캠페인에 참여했던 동기였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교회와 사회를 바라본 여전도회는 지난 해 3월, 중국 정부가 탈북자들을 북한으로 강제송환하는 것을 반대하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연합회별로 북송반대 캠페인을 확산해 나가던 여전도회는 2012년 3월 28일 서울 종로구 효자동 중국대사관 앞 옥인교회에서 중국 정부의 탈북자 북송을 반대하는 기도회를 갖기도 했다. 이 자리에는 이연옥 명예회장과 주선애 전 회장 등 여전도회의 원로들도 대거 참석해 탈북자들의 인권을 위한 위한 선교여성들의 큰 관심을 표출하기도 했다.
 
1백15년의 역사 속에서 여전도회는 선교여성으로 선교와 교육, 봉사의 실천적 사업을 통해 비전을 실현해 나가고 있다. 특히 '새 역사를 창조하는 선교여성'이라는 대주제 아래 기독교 문화창달과 청년회원의 활성화, 대학생 복음화와 군선교, 평화의 집 건립, 서울여자대학교 학생복지관 건축 후원, 여성복지타운 건립에 대한 꿈을 품고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으며, 민족의 복음적 통일을 전망하면서 새 시대 교회여성의 모성적 봉사와 기도를 쉬지 않고 이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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