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심점

구심점

[ 연재 ] 구심점

우기식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1월 23일(금) 11:21
[영크리스찬]

한 집단이 오랜 세월을 지나다 보면 당연히 비대해지고 비효율화가 증대되어 이를 바로 잡고자 하는 노력을 하게 된다. 군대도 마찬가지이다. 보다 효율적으로 주어지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고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과정중에 당혹스러운 일들도 일어나게 된다.

필자가 정책을 다루는 부서에 있을 때 그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다. 군종분야의 문민화가 심각하게 정책적으로 토론이 되고 있었고, 이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고 반론의 자료를 마련하기 위해 급하게 미국, 프랑스, 독일 국방부를 방문하여 그들의 군종제도를 살펴보는 기회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중 프랑스와 독일은 이미 군종분야 문민화가 이루어져서 운영이 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상상도 못한 일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일단은 교회에 장병들이 없었다. 교회와 군종목사는 그들의 구심점이 아니었다. 그저 있는 건물과 목사님일 뿐이었다. 그리고 방문한 우리들 앞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모습은 한가지 정부정책을 앞에 두고 서로 갈등하는 모습이었다. 그와 반면에 미국은 군종목사님들이 적극적으로 군 속에 참여하여 장병들을 도와주는 구심점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다. 당연히 분단된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조기 문민화는 문제가 있다는 점을 부각하여 보고서를 작성을 했고, 그 보고가 한 축이 되어 문민화 문제를 조기 진화 할 수 있었다. 군 교회는 많은 장병들의 마음의 안식처이자 생활의 구심점이다. 그리고 군종목사는 감사하게도 보기만 해도 즐거워지는 그런 행운의 대상인 것이다.

높은 산에서 만난 한 병사는 다재다능한 친구였고 늘 밝은 친구였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가정형편이 너무나도 어려운 가정의 장남이었다. 몸은 군에 와 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을 생각할 때 마다 그 마음이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가? 그럴 때 마다 그 친구는 교회에 와서 피아노를 쳤다. 오랜 시간피아노를 치면서 기도하며 마음을 다스렸고 이것이 그 친구의 밝음을 유지시켜 준 원동력이 되었으며 제대 후 큰 교통사고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꿈대로 태권도 선교의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었다.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에 군에 입대한 친구들에게도 교회는 너무나 중요한 구심점이다. 나이 어린 고참들과 근무하면서 때로는 비상식적으로 분노를 삭이지 못해 부들부들 떠는 친구들도 교회에 오면 마음이 다스려진다. 아내와 아이를 바깥에 두고 입대한 친구도 울적해 질 때마다 교회에 와서 기도하며 마음을 다스리고 새 힘을 얻어 생활을 하곤 한다. 또 잊지 못할 한 친구는 새벽예배, 금요 심야기도회에도 나와 찬양을 인도하던 친구였다. 그 친구는 제대하면서 이런 편지를 필자에게 보내왔다. "교회가 아니었다면 저는 제대로 군대생활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부족하지만 귀한 장병들의 인생 한 부분에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감사함으로 오늘도 이 사역을 즐겁게 하게 된다.


우기식목사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