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자운동에 녹아버린 사람들, 황화자총무

작은자운동에 녹아버린 사람들, 황화자총무

[ 여전도회 ] 작은자의 어머니 황화자총무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0월 08일(월) 15:03

*작은자복지재단이 펴내는 '선교와 사회복지'에 연재되고 있는 고 황화자총무의 일대기를 여전도회면에 게재한다. 이 글은 고 황광은목사 이야기, '사랑을 받느니 보다는 사랑을 주게 하소서'(김희보 지음) 중 황 목사의 부인이자 시카고후원회 김유선 초대회장 부분에서 발췌했다.

작은자 선교회 총무 황화자 여사의 별세는 우리를 너무도 슬프게 했다. 황 총무님이 작은자를 사랑하는 뜨거운 열정은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때로는 내 마음을 부끄럽게 만들기도 하고, 어떤 때는 그 일에 적게나마 동참하고 있다는 행복감에 젖기도 했다. 황 총무님이 시카고 멕코믹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 나는 성경공부를 함께 하면서 사귀었고, 그가 귀국해 '작은자 선교회'를 만들었으며, 후에 대한예수교장로회 전국여전도회연합회 총무의 중책까지 겸임하여 충성하시다가 너무도 일찍이 아깝게 그 맣은 일과 사랑하는 작은자를 남겨 두시고 별세했다. 여기 시카고에는 70여 명의 회원들이 15년 간 계속해 열심히 동참하고 있다. 황 총무님이 보여 준 헌신의 정신을 본받아 작은자를 섬기면서 오는 기쁨과 행복이 우리 시카고 회원들 마음 속에 아름답게 피어나기를 간구해 본다.

다음 글은 황화자 총무가 보낸 선교편지의 한 부분이다.
 
"소외당한 어린이를 위한 목회의 한해를 돌아보며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했던 한해였으며 내게는 기쁨이 넘쳤던 한해였습니다. 특별히 시카고에 있는 멕코믹 신학교에서 사회 선교의 입문으로서 어린이 선교를 연구하고, 다시 지난 날 제가 섬기던 어린이 목회의 장으로 다시 돌아온 후 첫 해를 보내게 된 나에게 있어서 의미있었던 한해였습니다. 특별히 지난 한 해 동안은 그 동안 서독의 뒤스부르크에 있는 KNH에서 소외된 아동을 후원하는 사업 후원비는 물론 행정 및 사무비까지 재정적 후원을 받으면서 일해 오던 저는 성숙된 한국교회, 특히 어머니를 향하여 작은자들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친척의 관계를 형성하는 운동을 외쳐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선교사명을 수행하도록 허락하시고 축복해 주셔서 작은자를 위해 기도하고 섬기기를 원하는 많은 아름다운 교회의 어머니를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운동을 '작은자 운동'이라고 불렀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위해여 연구된 신학을 이 사회와 삶의 현장 속에서 전이하는 데 해산의 수고와 가정 속의 크고 작은 많은 어려움을 포용하여 새로운 삶을 창조하려고 노력했던 여성을 이용하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여성이 하나님 안에서 거듭난 삶을 영위할 때 이 사회가 하나님의 질서 속에 바로 세워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희는 현재 짧은 기간에 1백여 명의 작은자들을 사랑하고 후원하며 물질로 지원하는 회원을 얻게 된 것을 자랑하고 싶습니다. 지금 서울은 믿기 어려울 만큼 화려한 빌딩이 수없이 솟아올라 숲속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빌딩 숲과는 아랑곳없이 사무실을 찾는 작은자들은 '2기분  째 등록금이 밀여있는데 어찌하면 좋을까요?', '중학교는 졸업했으나 고등학교에 진학할 형편이 못됩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같이 믿던 어머니가 달아나 버렸어요. 아버지가 폐병으로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하고 계셔요.' 한결 같이 누구의 도움없이는 이 세상을 살아나갈 용기조차 잃어버린 모습들입니다. 마침내 이 작은자들 속에 함께 하시는 주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1985년 시카고에 계시는 김유선, 박기화, 백안나 등 몇 분 권사님들을 통해 후원회가 처음으로 시작되어서 작은자 운동을 전개하게 하셨습니다. 주 안에서 형제 자매된 친애하는 후원자님, 지난 한 해 동안 여러분의 기도와 후원으로 소외된 9지역의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시작할 수 있었으며, 1백4명의 작은자들이 저마다 형편에 따라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여름방학에는 장신대 학생들의 도움으로 작은자와 후원자들의 만남의 자리가 마련되었고, 2박3일의 일정에서 처음엔 웃음도 대화도 없이 서먹서먹했던 그들이 떠날 때는 다음 해에 다시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당부까지 남기면서 헤어졌습니다.(1986년)


황화자 총무는 1990년 선교편지에서 좁기만 했던 보금자리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여러 후원자님들을 보내 주셔서 증축했다는 것과 현재 30여 명의 작은자 가족이 따뜻하게 은혜 가운데 생활하면서 시도 쓰고, 타이프도 치고, 침술도 배우고 또 작사와 작곡도 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그들이 부른 복음성가와 그들이 쓴 시를 녹음 테이프에 담아 보내면서, 초등학교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그들이 영혼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기도라고 소개해 주었다. 황화자 총무가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위문편지를 보낸 데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는데 그것이 마지막 편지가 됐다.

"권사님이 보내주신 글을 읽고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언니처럼 자상하신 관심과 배려를 눈으로 훤히 보는 듯 했습니다. 아파보지도 않으셨으면서, 아팠던 사람의 몸 관리와 음식 관리를 어떻게 그리도 잘 아시는지요? 하나님께서 오라고 하셨어도 감사하며 갔었을 길을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을 더 맡기시려고 사랑하는 사람들 옆으로 다시 보내주셨습니다. 다시 주신 생명을 올 크리스마스의 크나큰 선물인 줄 알고 잘 관리하겠습니다."

황화자 총무는 암세포가 머리에까지 퍼지는 것도 모르고 별세하시기 한 달 전까지 작은자들을 충성스럽게 섬기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네 잔이 넘쳤으니 이제는 내 곁에서 편히 쉬어라.' 하신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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