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주의(pragmatism) 신앙

실용주의(pragmatism) 신앙

[ 목양칼럼 ] 목양칼럼

김성규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8월 30일(목) 15:22

태풍 볼라벤이 정이품송의 품위를 유지하던 큰 가지를 꺽는 등 피해를 속출하고 제주도와 서해를 거쳐 북동쪽으로 빠져나갔다. 국민들은 유리창이 깨지지 않도록 큰 창문에 X자로 테이프를 붙이며 다급하고 불안하게 의자 위를 날아다녔다. 아침 첫 뉴스로 피해 상황을 보는 국민들의 안타까운 마음과 모습들이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치열한 정쟁들, 반복되는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며 불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나만이 아닌 것 같다.
 
"유일한 진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얻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라는 실용주의를 표방하던 정권 말년에 "실용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실용성이 없는 것이다"라는 학자들의 농담을 들으며 한쪽으로는 뇌물과 부정한 정치, 자금시비 등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문을 닫고 있다.
 
이럴 때 생각나는 사람이 한 명 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8세기 말 우리 조선에 실용주의 정치 철학을 가진 정조 임금이 있었고 그 중심에 실용주의 리더십을 가졌던 다산 정약용이다. 그는 구약 성경의 다윗이 통치자로, 연주자로, 불패의 장수로, 놀라운 시인이었던 것처럼 리더십과 다재다능한 실력을 겸비하고 거기다 좋은 신앙까지 있었다던가? 1784년 사색당파로 찌들어 있던 당시 남인이던 다산이 정조가 내준 '중용' 70조목 풀이 숙제를 풀어오면서 자기파 대장인 이황의 학설을 제치고 반대파 수장 이이의 학설을 적극 지지 선언하여 정조를 기절시켰고, 결국 23살이 되던 해 성균관 시험을 1등을 하고 정조의 친위 싱크탱크인 규장각에 배치되는데 실용지학(實用之學), 이용후생(利用厚生)을 주장하면서 주자 성리학의 공리공담을 배격하고 봉건제도의 각종 폐해를 개혁하려는 진보적인 사회개혁안을 제시했다.
 
정약용 학문의 진정한 가치는 조선의 정신 부흥이었으나 건축과 실용학문에도 해박해 1789년의 배다리(舟橋) 준공과 1793년 수원성의 설계와 건축을 위해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기중기를 사용하는 등 당시 건축장과 목수들이 그를 당해내지 못했고 정조조차 그의 학문의 깊이를 경탄해 마지않았었다. 그러나 천주교와 관련해 채제공과 같이 탄핵을 당해 18년간의 긴 유배생활에 겨우 목숨만 부지했는데 정조가 보여준 애정과 사랑에 보답한다고 조선의 경세치술에 대한 다양한 깊이의 학술서 등 5백여 권의 저술을 남겼다.
 
정약용의 시 중에 "큰 아이는 다섯 살에 기병에 등재되고, 작은 아이는 세 살인데 군적에 올랐다네. 두 아이 일 년 세금이 오백 전이나 되어 빨리 죽기를 바라는데 의복에 신경 쓰랴!"는 시를 보면 당시 조선 사회가 얼마나 썩었는지 보여준다.
 
그는 특히 목민심서(牧民心書)를 통해 동서고금의 이론을 찾아 목민관에게 들려줌으로써 백성들이 나라의 혜택을 골고루 받을 수 있도록 하려 했고 흠흠신서(欽欽新書)로 무고한 백성의 옥살이를 없애기 위한 통치자의 인정(仁政)과 덕치(德治)의 규범을 기록했다. 다산은 조선의 사회의 부패와 부조리를 당시 관료들의 개혁 없이는 나라의 개혁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외쳤는데 그 소리가 지금도 들어야 할 자들에게 들리기를 바란다. 이렇게 양날을 가진 칼처럼 다가온 미국에서 시작된 실용주의(pragmatism)가 우리들의 정신적인 삶 전반에 알게 모르게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정의롭지 않은 현대 실용주의 이면에는 독사가 도사리고 있었다. 실용주의 자체가 진리는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간다고 보아 결과를 중요시 하지만 과정은 간과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실용주의 가치관의 영향은 크리스찬들의 신앙생활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실용주의 가치관의 부정적인 영향으로 믿는 사람들조차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릇된 신앙에 빠진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믿음의 근본인 본질적인 하나님의 성품과 생각과 뜻을 의지하며 살지 않고 현실적으로 지금 내 삶에 유익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 인도와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재물과 건강을 주시는 하나님의 권세와 같은 것들을 구원자이신 하나님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게 만들고, 더 나아가서 나 자신의 삶을 위해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것들을 이용하는 것이 신앙의 목적인 '실용주의 신앙'의 덫으로 믿는 자들을 유혹할 수 있다.
 
윌리엄 거널(William Gurnall, 1617-1679 영국 목사 )이 "하나님의 선하심이 인류 대다수에게 멸시됨을 바라볼 때, 나는 이렇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기적은 감사할 줄 모르는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인내와 자비이다.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갑옷이 아니라 그 갑옷의 주인이신 하나님이다"라고 설교한 것은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나 중심의 신앙으로 변질시킬 수 있는 신앙의 실용주의의 위험성을 이미 3백30년 전에 예견한 것일 것이다. 크리스찬들이 하나님의 갑옷의 유익함만을 생각하여 갑옷만을 의지하려고 할 뿐 갑옷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 갑옷을 우상을 없애듯 파괴해 버리실 것이다. 나를 위한 하나님만을 주목 하기보다 하나님을 위해 나는 어떻게 할까? 깊이 생각하는 믿음의 묵상이 더욱 절실한 때이다.


김성규목사 / 하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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