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사회책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기업의 사회책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 연재 ] <나눔과섬김> ISO26000 등 전세계 노력 가속화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1년 09월 07일(수) 09:38

지난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여파로 약 2년간 전세계의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란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주택자금을 빌려주는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상품. 미국의 은행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파생상품을 만들어 재정상황이 엉망인 사람에게까지 은행이 경쟁적으로 대출해주다가 주택경기가 가라앉고 금리가 높아지자 원금과 이자를 갚을 수 없는 수많은 대출자들은 결국 파산을 하고 말았다. 이 사건은 미국의 금융과 경제를 뒤흔들었고, 전세계의 소비국인 미국이 흔들리자 전세계의 경제는 겉잡을 수 없이 곤두박칠을 쳤다. 이 사건은 세계 역사상 금융기관들의 극심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로 기록되어 우리의 자손들에게까지 전해지게 될 역사적인 사건이다.
 
이 엄청난 사건으로 국제사회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다. 시민사회는 더 이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윤추구만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한편, 이들의 제품을 구매하지 말자는 캠페인까지 벌이기에 이른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요구로 인해 글로벌 기업들은 이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가시적인 조치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가운데 국제표준화기구(ISO)는 2009년 11월 기업, 정부, NGO 등 사회주체들의 사회적 책임 이행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름하여' ISO 26000'.

# 기업의 사회적 책임 중요성 부각

 지난 2010년 서울은 G20 세계정상회의로 떠들썩했다. 특히 G20 정상회의에 앞서 여러 회의들이 열렸는데 경제에 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았던 터라 이중 세계 최고 경영인들로 구성된 '비즈니스 서밋'은 전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자리에서는 무역투자, 금융, 녹색성장,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 4개 의제가 논의됐는데 이중 가장 큰 주목을 받은 부분은 '사회적 책임분과'의 기업 윤리경영과 사회적 책임에 관한 토론이었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승자독식, 신자유주의, 도덕적 해이 등의 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지면서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ㆍ기업의 사회책임 경영)의 중요성이 부각됐기 때문에 윤리와 사회적 책임이 전세계 경제계의 화두가 된 것. 이 토론이 더욱 관심을 모은 이유는 지난해 11월 1일 국제표준화기구가 ISO 26000을 발표한 이후였기 때문이다. 
 1990년대부터 세계적 현상으로 부각된 신자유주의세계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다국적 기업의 파워는 국가를 넘어 전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슈퍼 파워'의 수준에 이르게 됐다. 이러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이들은 대부분 지금까지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며 환경, 인권 등의 문제를 일으켜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소비자들이 기업에 더 높은 윤리 수준을 요구하면서 ISO(국제표준기구)는 기업들 사이에 지켜야 할 약속을 일종의 경영규칙으로 제시하기에 이른 것이다.

# 'ISO 26000' 발표

 원래 ISO는 제품의 품질 표준을 주로 다뤄왔다. ISO는 'ISO 9000(품질경영ㆍQM)', 'ISO 14000(환경경영ㆍEM)'에서 지난 2009년에는 'ISO 26000(사회적 책임ㆍSR)'을 순차적으로 발표했다. 시간이 갈수록 점차 경제의 범위를 넘어 환경, 사회적 책임 등으로 표준화 대상을 점차 확대 발전시킨 것.
 ISO 26000은 기업들에게 의사결정에 투명성과 윤리성을 갖추고 있는지, 기본 인권을 지키고 있는지, 법적으로 피고용인들을 정당하게 대우하고 있는지, 환경 파괴에 영향을 주는 기업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지, 탈세나 불법로비 등 탈법적이며 비윤리적인 수단을 사용하고 있지 않은지, 소비자들을 기만하고 있지 않은지 등등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나 그 한계도 명백하다. ISO 26000은 공식인증제가 아니어서 ISO 9000 품질경영이나 ISO 14000 환경경영은 제3의 전문적 인증기관을 통해 공식적인 인증을 받도록 하고 있지만 '사회적 책임'의 경우 국가나 업종에 따라 편차가 크기 때문에 가이드 라인을 스스로 채택하면서 일종의 자발적 선언을 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ISO 26000은 윤리경영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화두를 이끌어내며 전세계 기업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 우리나라의 사회적 책임 수준 낮아

ISO 26000이 만들어내고 있는 기업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재벌들의 의식변화를 이끌어내어 돈을 버는 과정 자체에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까지 글로벌 기업들은 흔히 자선활동이나 사회공헌으로 사회책임을 대체해 왔다.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라'는 우리 속담은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구실을 했다. 하지만 이는 사회책임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사회책임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돈을 버는 과정 자체가 정당해야 하기 때문. 기업들이 아무리 많은 매출과 이익을 올려도, 제품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거래 중소기업의 납품단가를 과도하게 낮추고(공정거래 관행 위배), 노동자 권리를 짓밟고(인권과 노동 관행 존중 위배), 영세 자영업자들의 생계까지 위협한다면(지역사회 발전 위배), 사회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은 어떠할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전세계 평균을 훨씬 밑도는 부끄러운 수준이다. 유엔은 인권ㆍ노동ㆍ환경ㆍ반부패 등에 관한 10대 기본 원칙의 이행 확산을 내걸고 전세계 기업을 대상으로 '글로벌콤팩트' 운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전세계 가입 회원 기업은 7천여 개에 달하고 있다. 그중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1백30여 곳이 전부. 이 사안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경제를 대표하는 10대 그룹의 계열사 6백17곳 중 글로벌콤팩트에 가입한 기업은 14곳에 불과하다. 유엔글로벌콤팩트에 가입한 회원사들은 매년 10대 원칙을 어떻게 이행하고 있는지를 밝히는 보고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재벌들은 가입을 꺼리고 있는 것.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동반성장, 공생발전 등의 용어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이러한 용어가 내포하는 핵심은 다름아닌 기업의 사회책임이다. 기업의 사회책임에 대한 글로벌 기준까지 마련되어 있는 이때 우리나라의 기업들도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정책과 국민들의 지지와 헌신 때문인 것을 깨닫고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에 책임을 다하는 자세를 보여줘야 할 때다. 국민들은 비자금이나 횡령 등의 사건 사고 후 면죄부를 얻기 위해 재벌 총수들이 사재를 출연하는 식의 사회 공헌이 아닌 진정성이 느껴지는 진중한 책임의식을 기업들이 보여주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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