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리더십의 두 번째 요소 '목표'

<3> 리더십의 두 번째 요소 '목표'

[ 상담Q&A ] 김광건교수의 리더십 특강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1년 01월 11일(화) 16:23

목표 없는 리더십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리더십이란 어떤 특정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목표가 생기면 리더를 추대하게 되고 그 목표는 리더십을 더 강화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목표가 성취되면 두 가지의 선택이 있습니다. 목표가 재설정되든지 리더십이 소멸하든지 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리더십은 목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죠.

   
리더의 존재 의미 혹은 기능의 의미란 어떤 이루지 않으면 안 되는 그 무엇 때문입니다. 만약 그 목표가 성취되었다면 리더십 구조는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됩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끄는 자와 이끌리는 자로 구조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물론 일각에서는 리더십 구조의 배경은 인간의 본능적이고 정서적인 필요성 때문이라고 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즉 부성(父性)에 대한 본능적 추구라든가 공동체의 성공과 실패를 어느 곳으로 집중시켜서 감성의 돌파구로 삼고자 함이라든지 여러 의견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시각들은 리더십에는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약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대부분의 공동체와 조직에서의 리더십은 어떤 목표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목표가 이미 설정되어 있는 중에 리더의 부름이 있기도 하고 반대로 리더가 공동체에게 목표를 제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튼 리더십과 목표는 서로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리더십은 목표를 필요로 합니다. 왜냐하면 목표가 없으면 리더십은 약화되며 결국에는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목표는 성취되어지기 위하여 리더십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일부에서는 인생을 혹은 공동체의 존재 등을 목적보다는 과정이라는 것으로 승화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인생이 과연 목표보다는 과정일까요? 그렇다면 리더십도 자질구레한 목표를 위해서 뛰는 것보다는 고상한 과정에 의미를 두면서 가는 것일까요? 대답은 당연히 '아니오'입니다.

과정으로서의 의미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과정이 중요해지면서 목표가 사라져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세계관은 분명히 목표지향적이기 때문이다. 타종교의 세계관처럼 돌고 도는 끝도 없이 순환하는 상태의 세계관이나 무위(無爲)의 세계관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시간관은 마치 물리학의 벡터(vector)처럼 직선이고 한쪽으로의 방향을 갖는 방향량인 것입니다. 과정도 물론 매우 중요시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목표를 제시하고 있으며 또한 이에 수반한 여러 가지 상황적 목표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이 '현재를 즐겨라'입니다. 과거에 매여 있는 부자유한 인생, 그리고 무조건 미래로만 도피하면서 현실을 도피하려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는 매우 귀중한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기에 즐기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약속된 미래, 구원의 완성,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하여 가도록 되어 있으며, 예수님의 승천과 재림 사이에 이를 더 구체화하는 명령이 있는 것입니다. 현재는 머무르는 곳이 아니라 견디고 감사하는 곳이며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미래에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미래 목표의 인생을 살았습니다.(빌3: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어떻게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향해 살아가는가도 중요합니다. 과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목표와 그 성취도 매우 중요합니다. 리더십은 이를 위해 존재합니다.

김광건교수/ 서울장신대 ㆍ 기독교리더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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