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7일~1월 1일

12월 27일~1월 1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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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23일(목) 11:20

월-성탄절의 필요성
본문: 요 5:1-18
찬송가: 112장(구 112장)

우리 삶을 표현하는 단어를 고르라면 기다림일 것이다. 특히 유대인들은 그들의 삶에 분명한 소망을 안겨 줄 메시아를 기다리며 억압과 고통 가운데서도 인내하며 살아왔다.
 
본문에 나오는 베데스다 연못가가 어쩌면 유대인들의 인생을 축소해서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연못가에 누워있다. 그들은 모두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곳에서 자신의 연약함이 낫기를 기다린다. 단순히 누워있으면 낫는 것이 아니라 그 연못에 놀라운 사건이 일어나야 하고 그 사건 속에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거기에 38년 된 병자가 있었다. 38년이란 어쩌면 인생, 광야 생활을 상징한다. 어쩌면 스스로 해결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이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어보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 사람의 갈망과 의지를 물어본다. 연약함 속에 매여 살겠느냐? 아니면 치유와 자유의 삶을 살겠느냐고 물어본다. 그 대답은 분명하다. 자유롭고 싶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메시아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더 이상 죄악 속에서 고통을 누리며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승리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예수님이 이땅에 태어나신 것이다. 누구도 스스로 그 물 속에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38년을 기다린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신다. 자유를 주신다.
 
오늘 우리 삶 속에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문제가 해결되었는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일어났는가? 자리를 들었는가? 그리고 집으로 돌아갔는가? 예수님의 탄생은 형식이 아니다. 진정으로 자유와 기쁨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시다.

오늘의 기도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만이 나를 일으키실 수 있고, 자유케 하시고, 평화를 누리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은총에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혁 목사
선창교회 시무


화-믿음의 사람
본문: 눅 18:1-8
찬송가: 321장(구 351장)

우리는 기도를 호흡하는 것처럼 여기고 해야 한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분명히 응답해 주시는 분임을 강조하셨다. 그런데도 8절 말씀에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반문하신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재림하실 것을 분명히 말씀하시면서 그때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실천적인 기도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는 말씀인 것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성도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또한 많은 응답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왜 마지막 때에는 그런 믿음의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인가?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주님 재림하시기 직전에 온 세상이 사단의 죄의 권세로 넘쳐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미워하고, 불법이 성하고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말씀하셨다. 마지막 때는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배반할 것이라 했는데, 주님의 말씀처럼 사도 바울도 말세의 특징을 말한 적이 있다. 딤후 3장 1~5절에서 그 특징을 간추리면 우선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자랑과 교만과 비방함과 부모를 거역함, 감사하지 아니함, 거룩하지 아니함, 무정함, 원통함을 풀지 아니함, 모함함, 절제하지 못함,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 조급함, 자만,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함,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을 부인함 등을 열거했는데, 바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우리 사역자들부터 정체성과 본분을 지켜 믿음의 사람다워야 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심을 믿고, 그 믿음으로 주님을 따르게 하소서 우리의 믿음의 생활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은성 목사
다대중앙교회 시무


수-새벽에 뜨는 별
본문: 계 2:24-29
찬송가: 88장(구 88장)

이 세상은 바다와 같아서 순풍에 돛달고 항해하는 것과 같아 풍랑을 만나면 순식간에 망망대해로 밀려가는 때가 있다. 고해와 같은 이 세상을 이기기가 정말로 힘이 든다. 그런데 한가지 원리를 터득하면 달라진다. 모든 물건은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위에서 아래로 눌리고 위에서 떨어지고 아래로 가라앉는다. 인생의 이와 같다.

그런데 중력의 반대 힘은 부력이다. 즉 뜨는 힘이다. 작은 바늘이 가라앉는 것은 부력이 적어서이고 몇만톤 급의 배가 뜨는 것은 어마어마한 부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중력은 구체적으로 낙심 혹은 낙망이라는 것이다. 이 낙심을 이길 힘이 있어야 한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사40:31)"라고 했듯이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이 부력이다. 낙심이라는 중력보다 갈망이라는 부력이 더 크면 얼마든지 뜰 수가 있다. 쇠붙이에게 스치로폼을 묶어두면 가라앉지 않는다.스치로폼 속에는 부력이라는 비밀자원이 숨어 있듯이 우리의 할 일은 부력되시는 주님을 붙잡는 일이다.
 
우리는 완벽하기를 소원한다. 완벽하면 주님은 우리를 쓰시지 않는다. 주님은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신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주님은 우리를 쓰시되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깨어지기 쉬운 우리를 오늘까지 보호해주신 것은 그분의 특기이다. 스치로폼은 주님의 말씀이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시37:5-6)." 우리의 소망은 새벽별을 따르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새벽별이신 주님, 주님으로 인해 나뿐만 아니라 이웃의 숨통도 터주는 일을 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부력으로 독수리같이 힘차게 오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양기수 목사
성민교회 시무


목-열매를 맺자
본문: 눅 13:6-9
찬송가: 450장(구 376장)

어떤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그러나 3년이 지나도 열매가 열리지 않았다. 주인은 마침내 포도원지기에게 말했다. "내가 3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이 말을 들은 포도원지기가 말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포도원은 교회를,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 포도원지기는 예수님이시다. 그리고 무화과나무는 교회 안에 있는 우리들이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무엇일까?
 
첫째로 하나님은 무화과 나무같이 나에게 특별한 애정을 갖고 계신다. 둘째로 하나님은 수많은 포도나무들 속에 달랑 서 있는 무화과나무처럼 우리 각자가 자기 개성과 재능대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셋째로 하나님은 우리가 열매 맺는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넷째로 하나님은 우리가 열매 맺지 못할 때 연기하여 주신다. 영적 심판과 영적 사형을 예수님의 간청으로 연기하여 주셨다. 이게 은총이고 은혜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예비하신 축복을 받지 못하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한 번 더 기회를 주신다. 2010년을 보내는 이 마지막 주간은 예수님의 간청으로 다시 연기 받는 시간이다.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이렇게 간구하는 예수님의 간구 속에는 우리에게 대한 주님의 사랑과 기대감이 들어 있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무시무시한 심판도 있다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한 해도 성령과 말씀의 능력으로 돌보아주신 주님! 그러나 열매 없는 우리의 삶을 회개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을 가지고 새해를 맞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대용 목사
해남중앙교회 시무


금-한 해의 마지막 길목에서
본문: 호 14:4-9
찬송가: 301장(구 460장)

이제 무엇을 하고 살았는가보다는 어떻게 살았는가가 더 절실해 지는 2010년 마지막 길목에서 더 가까이 주변을 돌아본다. 탕자처럼 방황하며, 불순종한 요나와 음탕한 고멜처럼 살지는 않는지, 삶이 미숙해서 누군가에게 짐이 되지는 않았는지, 너무 오만해서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살지는 않았는지, 내 잠시의 기쁨과 평안을 위해 남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받기만 바라고 정 주는 데는 인색해서 외톨이로 살지는 않았는지, 노력보다 돌아오는 것이 적다고 욕심을 키워 불평하진 않았는지….
 
내가 아프게 한 모든 사람들과 내가 좀 더 가까이 가지 못한 내 곁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 송년의 시간, 용서와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시간이어야겠다. 잘못하고도 뉘우칠 줄 모르는 이가 아닌 나를 조용히 흔들어 본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2010년 마지막 길목에 서 있는 우리에게 강력한 청산의 확신과 신선한 새희망을 주고 있다.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호14:4~5)."
 
"너 하늘아 네 이슬을 내리고 구름은 의로우신 분을 비처럼 내려 보낼지어다. 땅은 열리어 구세주를 낳을지어다." 아름다운 라틴어 단가(短歌)이다. 하나님의 은총은 진실로 메마른 흙에 새 생명을 부여하는 부드러운 아침이슬이나 가랑비이다. 이것들은 참으로 부드러움을 담뿍 느끼게 하는 이미지들이다. 우리의 소명은 정말 그 아침이슬에 대한 감수성을 더욱더 키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비에 영혼을 열어 내밀한 자아가 그 어린 아기 구세주를 낳게 하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복의 근원이신 주님,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이들에게 첫눈처럼 새하얀 축복을 내려 주십시오. 새해에 이제 우리도 다시 시작하고 다시 기뻐하고 싶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장재도 목사
합정교회 시무



토-유익한 훈련의 3가지 원칙
본문: 히 12:11-13
찬송가: 382장(구 432장)

얼마 전 우리 사회에 31세의 젊은 나이로 모 대기업의 한 지점장의 위치에 오른 이야기가 화제가 됐다. 주인공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다 젊은 나이에 지점장이 됐다. 그가 지점장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은 한 가지 원칙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30분 일찍 30분 늦게'라는 원칙이었다. 그렇다. 한 가지 원칙만 가지고 있어도 우리의 삶은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켜서 이전과 달라진 삶을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훈련받아야 한다. 유익한 훈련에는 3가지 원칙이 있다.
 
첫 번째 원칙. '지금', '당장'이라는 것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본문 11절에서 성경은 "무릇 훈련이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라고 말하고 있다. 징계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는 훈련이다. 즉, 살아가는 모든 인생의 순간들이 우리에게는 훈련이다. 그리고 그 훈련은 언제나 미래를 위한 것이다. 훈련받는 사람들은 "결코 지금의 훈련의 고통이 전부인 줄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하게 갖고 있어야 한다.
 
두 번째 원칙. "지금이 전부가 아니라 후에 열매가 있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고통을 이기고, 현재에 매달리지 말고 미래를 꿈꾸면서 살아야 한다. 세 번째 원칙. 용기를 갖는 것이다. 인생의 어떤 훈련 가운데서도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열매를 얻을 수 있다.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저는 다리가 고침을 받게 하고 절망의 늪에서 일어나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훈련의 목표이다. 이와 같은 훈련의 원칙을 가지고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선한 목자 되신 주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날마다 점점 더 강하여 지는 인생되게 하시고, 승리하는 믿음의 백성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형석 목사
삼송교회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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