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디옥의 바나바와 바울

안디옥의 바나바와 바울

[ 연재 ] 사도바울행전II. 다메섹에서 안디옥으로(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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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06일(수) 10:26

   
▲ 바울과 마가(뒤러 作).
바울과 바나바는 다소에서 배를 타고 하루 뒤에 시리아의 항구 실루기아에 닿았다. 거기에서 안디옥까지 걸어갔다. 그 길은 대상(隊商)들이 낙타에 명주를 싣고 다니는 실크로드의 일부분이다. 안디옥의 시장에서는 흑인 노예들이 매매되고 있었다.

바나바는 곧바로 장로들이 모여 있는 곳에 바울을 데리고 갔다. 그들은 바울을 정중하게 맞이하였다. 거기에는 안디옥의 다른 명사들도 모여 있었다.

이제 바울의 안디옥에서의 전도 활동이 시작되었다. 바울의 전도 활동은 이제부터 교회를 바탕으로 한 공식적인 목회였다. 바울의 안디옥에서의 전도 활동은 바나바에게 협력하는 형태로 행해졌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 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 11:25~26).

바울은 바나바를 도와 은혜의 이슬이 마르지 않는 안디옥의 새 교회에서 만 일 년 동안 평화롭게 복음을 전하였다. 그것은 목회자로서의 이상적인 제1년이었다. 유대인에게 업신여김을 받던 이교인들이 십자가의 설교에 의하여 고귀한 자가 되었다. 바울이 안디옥 교회에서 봉사한 후 개종자의 수는 부쩍 늘었다.

안디옥 교회에서는 토요일 저녁에 애찬식을 하였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서로 간에 친목을 다지기 위하여 행해졌다. 매주 행해지는 이 의식은 일주일 간 신도들의 힘이 되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유대인의 시나고그에 가서 모세의 율법에 따라서 생활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율법이 더할 나위 없이 무거운 짐이라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되었다.

유대교 회당에서 듣게 되는 말은 "그것을 하지 말라" "그것을 만지지 말라"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음식을 비롯하여 모든 것은 "깨끗한 것"이거나 "부정한 것" 중 어디에 속하였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와 같이 복잡한 규정을 지키라고 권고하지 않았다. 오히려 옛 모세의 율법에 따른 제사의식은 주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끝났다고 강조하였다.

두 사람의 열성과 노력으로 안디옥 교회는 날로 부흥하였다. 교인들 중에는 로마인과 헬라인 및 유대인 그리고 자유인과 노예들도 있었다. 돌이켜볼 때 안디옥 교회에서의 바울의 일 년 간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핍박 때문에 피신해 온 사람들과 교제하며, 그 사람들을 상대로 한 전도 활동에 참가하여, 바울 자신의 신앙 태도와 신앙 이해에 더욱 깊이와 확신을 준 시기였다. 또한 10여 년 동안의 명상 시대에 터득한 '복음'의 이해를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신도들을 회심하게 하는 때이기도 하였다.

그 무렵에 팔레스틴에 대기근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것은 클라우디오 황제(재위 41~54) 치하(행 11:28) 곧 주후 45년 무렵의 일이었다.

이 기근 때에 티그리스 강 동쪽의 아비아베네 여왕이며 유대인인 헬레나는 동포들의 굶주림을 자기 자신의 일처럼 여겼다. 헬레나 여왕은 애굽에서 많은 밀을 사고, 구브로 섬에서는 무화과를 사서, 예루살렘의 굶주린 동포들에게 보냈다. -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고대지'에 있는 기록이다.

김희보 / 목사ㆍ서울장신 명예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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