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권능의 스데반

은혜와 권능의 스데반

[ 연재 ] 사도바울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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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4월 21일(수) 17:22
   
▲ 율법학자에게 끌려가는 스데반(돋을새김, 노트르담 성당)


여느 바리새인들과 같이 젊은 율법사 바울이 볼 때에 스데반의 설교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이단이었다. 디아스포라인 스데반은 지난 유월절 때에 율법적인 열심에 감동하여 거룩한 예루살렘에 왔다. 그런데 이제는 자기가 예전에 믿던 모든 것에 대하여 큰 소리로 반대하고 있다. 그 목소리의 크기만큼 스데반의 발언은 위험하였다.

오순절 이전에 가말리엘이 나사렛 예수를 두둔하는 발언을 했었다면, 바울은 스데반을 만난 이후처럼 나사렛 예수의 무리를 미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울이 볼 때에 스데반은 새로운 종교 운동의 제일인자로서 주의해야 하는 인물이며, 유대교 중에서도 특히 바리새파의 원수라고 생각하였다.

스데반은 구약의 역사에 근거하여 유대교의 예루살렘 성전 예배를 비판하였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주 예수는 참 그리스도시며, 유대인이 소망 가운데 기다리고 있는 메시아로서, 7백년 전에 이사야가 예언한 하나님의 아들인 '고난의 주의 종'이라고 힘차게 주장하였다.

그러나 청년 바울은 욕되고 부끄러운 나무인 십자가에 못 박혀 흉악한 죄인처럼 죽은 나사렛 예수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아라고 하는 말은 듣기만 하여도 화가 치밀었다. 율법에는 분명히 나무 형틀은 하나님의 저주라고 밝히 말하고 있다.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 21:22~23).

청년 바울은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고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나사렛 예수를 악인으로밖에 달리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의 바울은 유대인의 독특한 선입관에 사로잡혀, 사물에 관한 생각 방법과 시야가 바늘귀만큼이나 좁았었다.

청년 바울은 스데반과 논쟁을 벌인 적이 있었다. 바울은 얼굴을 붉히고 주먹 쥔 손을 흔들며 말하였으나, 스데반은 미소를 머금고 잔잔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이론이 정연한 열변가로 자처하는 청년 바울은 토론에서 밀렸다.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기 때문에 쉽게 반론을 펼 수 없었다.

청년 바울은 스데반 같은 부류 때문에 메시아께서 오시는 일정이 늦어진다고 생각하였다. 사람들은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을 빠르게 하거나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유대인의 율법 침범과 배교는 메시아가 오는 것을 지연시킨다고 가말리엘을 비롯한 바리새파 사람들은 믿고 있었다.

랍비 시므온 벤 요하이는 이렇게 말하였다. "메시아의 오심은 사람들이 두 척의 배를 끌어당기어 양쪽을 밧줄로 묶고 그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두 척의 배가 단단히 이어져 있으면 집을 지을 수 있으나, 배가 따로 뜨면 집을 지을 수 없다."

다가오는 메시아의 복된 날을 눈 앞에 두고, 율법을 열렬히 사랑하며 이스라엘의 일치를 이룩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말미암아, 청년 바울은 나사렛 예수를 믿는 유대인을 반대하는 일에 온 힘을 쏟았다. 청년 바울이 볼 때에 나무에 달린 자가 메시아일 수 없으며, 또한 그들의 분파 행동은 메시아가 오는 것을 더디게 하는 것이었다.

김희보/목사ㆍ서울장신 명예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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