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교사

좋은 교사

[ 연재 ] < 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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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3월 30일(화) 18:23


요즈음 나는 프랑스에서 언어 공부하면서 교사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고 있다. 잘 가르치는 교수들의 공통점은 일단 학생 가르치는 일에 열정이 있다. 그러니 당연히 과목에 대해서 충실하게 준비해 온다. 그리고 가르칠 때 흥미를 갖고 배울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그런데 반대로 좀 불만을 갖게 되는 교수들도 있다. 이 교수들은 그야말로 정반대이다. 우선 가르치는데 성의가 별로 없다. 그러니 준비도 제대로 해오지 않는다. 결국 공부 시간에 졸리게 만들고 시간만 때우게 한다. 그러니 나는 시계만 보게 된다. 의지를 가지고 공부하는 어른이 된 나도 교사에게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을 보니 어린 학생들에게 교사가 미치는 영향을 막대하리라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교육 받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학교 교사들의 가르침에 만족하지 못해서 사교육을 찾는다면 그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때 사교육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선생님에게 배우냐는 것이다. 학교에서 무슨 소리인지 몰랐던 것을 학원에서 배우면서 제대로 알게 되었다는 얘기를 가끔 듣게 된다. 학원이 좋은 게 하니라 그때 가르친 교사가 좋았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교사를 선택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선택을 하지 않고 무작정 사교육을 시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결국 아이들도 고생, 부모들도 고생이다.

일반적으로 학교 교사들이 학원 교사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한다. 학교 교사의 말은 안 들어도 학원 교사의 말은 잘 듣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학교에 개인적으로 무능하거나 성의 없는 교사들이 있겠지만 학교 교사들을 무능하다고 도매금으로 무시하는 것은 경솔한 행동이다. 현실적으로 학교 교사들은 학원 교사들과는 달리 학생들 가르치는 것 외에 맡겨진 업무가 많기 때문에 입장이 다른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피상적으로 볼 때 그런 판단을 하기 쉽다. 그러나  교육을 받는 입장에서 교사들에 대해서 안 좋은 선입견을 갖는 것은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 어떤 이유에서건 교직을 천직으로 알고 가르치는 교사들을 일단 인정해야 한다.

다만 현실적으로 그런 차이가 구체적으로 나타난다면 크리스찬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우선 학교에 보고를 하는 것이다. 교사들에 대한 불평을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개인의 이익만이 아니라 많은 아이들의 교육이 달린 문제이므로 사명감을 가지고 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 미국에서 신학교에 다닐 때 잘 가르치지 못하는 교수가 있었다. 학생들로부터 좋지 못한 평가를 받은 후에 결국 교수직을 사임하고 말았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때 개인적으로 그 분이 안 되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학생들을 위해서는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학교에서 그런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시도해볼만 하다고 생각된다. 교사평가제도 가지고 말이 많은데 제도의 운영문제는 깊이 생각해야겠지만 교육에서 교사들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한다면 그와 비슷한 일은 분명히 필요한 일이다.

또 하나 할 일이 있다. 문제가 되는 교사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나도 요즈음 한 교수를 위해서 기도를 시작했다. 도무지 성의가 없고 강의시간을 대충 때우는 것 같아서 불만스러웠다. 그래서 불평을 하다가 문득 이건 크리스찬의 태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를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그를 변화시켜주실지 아니면 다른 교수로 바꿔주실지 모르겠지만 나는 기도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의 학교의 교사들을 위해서도 그런 중보기도가 필요하다. 그들이 크리스찬이라면 더욱 그래야겠지만 신앙에 관계없이 교사들이 학생들을 사랑하고 잘 가르치도록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교사가 만족이 안된다면서 내 아이만을 위해서 사교육을 시키기 전에 모든 아이들을 위해서 이런 기도를 먼저 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사는 정말 중요하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는 결국은 좋은 교사들이 있을 때 미래가 있다.

방선기/직장사역연구소 소장ㆍ기윤실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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