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

'나쁜 사마리아인들'

[ 연재 ] 특별기고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0년 03월 18일(목) 13:39

 
미국의 신학자 하비콕스는 그의 책 '세속도시'에서 교회의 봉사적 기능을 말할 때 "도시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디아코니아'라는 말을 단지 '봉사'라는 말로 번역하기를 싫어하고, 오히려 병을 치유하거나 분열과 갈등을 화해시키고 상처를 꿰매고, 갈라진 것을 합치게 하여 유기체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같은 교회의 봉사적 기능을 말해주는 성서적 근거로 그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누가복음 10:25∼37)를 들고 있다.
 
우리나라가 낳은 세계적인 경제학자 장하준교수(케임브리지대학)는 성경에 나오는 이 '선한 사마리아인'에 빗대어 '나쁜 사마리아인들(Bad Samaritans)'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 장 교수는 이 책에서 부자나라의 사람들이 가난한 개발도상국의 시장을 장악하고 가난한 나라에서 경쟁자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자유시장과 자유무역을 설교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이들 선진국들이야말로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라고 말했다. 표면적으로는 개발도상국들을 도와주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내를 알아보면 자신들의 이익을 실현하려는 나쁜 의도를 가지고 도와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선한 사마라인'은 착하기 때문에 곤경에 처한 사람이 누구이든 무조건 돕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게임이론상 도움을 받는 자가 이를 간파하면 노력하지 않고 도움만 기다리는 전략을 택하게 된다. 그와 같은 시각으로 우리나라의 대북 지원 같은 것은 전형적인 '사마리아인의 딜레마'라고 할 수 있으며, 최근 아프리카 등지에 무분별하게 쏟아 붓는 구호물자와 원조들이 오히려 아프리카 주민들의 자립 의지를 꺾고 있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실직자와 가난한 취약계층에 대한 최저생계비 지원은 바람직하지만 무분별한 구호나 어떤 시혜적인 자선행위는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초래하여 가난의 수렁에서 평생 빠져나오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우리의 구제나 봉사가 그와 같은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면 그것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선행이 아니라 오히려 나쁜 사마리아인의 전횡이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선한 일을 하기 위해 미리 신문 기자를 불러다가 광고부터 한다. 자기 이름을 내고, 누가 알아주길 바라면서 칭찬 듣기 위해 구제와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도 오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이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돕는 것을 하나의 낙으로 여기는 도덕적 향락주의자들 역시 나쁜 사마리아인들인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들도 철저하게 그리고 규칙적으로 구제를 했지만 그들의 진정한 구제의 동기는 사랑이 아니라, 자기 의를 나타내는 자기 증명용이요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기 위한 '나팔을 부는' 행위였던 것이다.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공적, 민간적인 모든 사회적 노력을 사회복지라고 했을 때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여기에 따르는 일들을 성취하게 하면서 그들이 직면하는 문제들을 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스스로 자기 일을 처리해 나가면서 만족감을 가지고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문적인 활동을 말한다. 한국교회가 그동안 나름대로 사회복지 내지 봉사활동을 전개하여 왔지만, 체계적인 봉사활동이라기보다는 단편적이고 즉흥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또 오늘의 강도 만난 사회적 약자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형편이나 필요에 따라 일회성 행사 위주의 봉사를 시행하는 것으로 사회에 비쳐지기도 했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회봉사가 단순한 자선사업이나 종교 활동이라는 통념적인 차원을 넘어서 섬김을 통해서 생명을 살리고 지탱할 수 있도록 보전하며 경영하는 일에 참여한다는 소명을 가지고 사회봉사에 임해야 한다.

윤  의  근
목사ㆍ대구신암교회ㆍ한국장로교복지재단 대표이사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