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말리엘의 문하생

가말리엘의 문하생

[ 연재 ] 사도바울행전I.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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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3월 02일(화) 16:40
   
▲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행 22:3).

마침 바울의 누나가 출가하여 예루살렘에서 살고 있었다. 훗날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위험에 처했을 때에 누나의 아들(생질)이 바울에게 알려준다.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린지라"(행 23:16). 바울 당시 다소에서 예루살렘에 가려면 육로보다는 배를 타고 가는 것이 훨씬 편리하였다. 바울은 고향 다소를 떠나 예루살렘에 가서 랍비 가말리엘의 문하생이 되었다. 바울의 나이 이십 전후의 일로 추측된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힐렐 학파와 샴마이 학파가 바리새파의 양대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힐렐파는 비교적 자유로운 학풍인 반면 샴마이파는 보수적이었다. 이 두 학파는 율법 해석 문제로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바울이 입문한 랍비 가말리엘은 힐렐의 손자로서, 그 당시 힐렐파를 이끄는 석학이었다. 가말리엘은 비록 온건한 것으로 소문난 힐렐파였으나, 율법을 지키는 일과 전통을 존중하는 점에서는 엄격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가말리엘은 무척 공평하고 독실한 인물이었고, 역사적인 상황에도 뛰어난 식견을 가지고 있었으며, 산헤드린에도 세력을 가지고 있는, 모든 국민에게 존경 받는 인물이었다. 그는 훗날 베드로와 사도들을 위해 변명을 하기도 한다.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행 5:34).

바울은 고백하기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행 22:3), 그 결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고 하였다. 또한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행 26:5).

예루살렘에서 랍비의 학생으로 공부하는 청년 바울의 태도는 이상하다고 할 정도로 열심이었다. 그 열심은 청년의 정열을 모조리 율법 연구에 퍼붓는 데서 오는 정열의 결과였다. 바울 자신이 이렇게 술회하였다.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비슷한 나이 또래)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었고"(갈 1:14),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 3:5~6).

바울은 디아스포라 출신의 유대인이다. 다소에서의 일상어는 모름지기 헬라어를 썼을 것이고, 성경은 랍비에게서 배울 때는 히브리어를 썼을 것이지만, 일상에서는 대부분 '칠십인역 헬라어 성경'을 이용했을 것이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길리기아 출신자들의 회당에 속해 있었을 것이다.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행 6:9)라고 하는 구절이 그것을 말해준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공부하며 엄격한 바리새인의 생활 방법을 보고, 다소에서의 유대교도 생활을 반성한 낌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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