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믿는 형제들(221장)

주 믿는 형제들(221장)

[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 ]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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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9월 11일(금) 12:14

작사 : J. 포셋 / 작곡 : H. G. 네겔리

영국 요크샤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존 포셋(John Fawcett)은 런던에 가서 직공 생활을 했다. 그가 침례교 목사로 임명되는 데 필요한 공부를 마친 것은 26세 때인 1765년이었다.

포셋 목사는 요크샤 웨인스게이트의 작은 교회에 부임하여 목회 생활을 하였다. 보수는 연봉 2백 달러 이하였다. 점점 불어나는 식구들의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였다. 그가 목회 생활을 시작한 지 7년째 되는 해인 1772년, 런던의 어느 큰 교회로부터 저명한 목사 질 박사의 후임으로 청빙을 받았다. 생활을 위해서나 명성을 위해서나 런던으로 가는 것이 당연하였다.

마침내 이별의 날이 이르렀다. 포셋 목사는 이별의 설교를 하였다. 이삿짐이 화물차에 실리는 것을 보며, 마을 사람들은 사랑하는 포셋 목사 일가의 주위에 모여 울음을 참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헌신적인 사랑에 포셋 목사 일가는 크게 감동하였다. 포셋 목사 부인은 끝내 눈물을 흘리며, "사랑하는 이 사람들과 헤어질 수 없어요"라고 말하였다.

포셋 목사도 꼭같은 심정이었다. 그는 "그래요. 이 마을에서 그대로 지내도록 합시다"라고 부인의 뜻에 동의하였다. 이삿짐은 차에서 도로 내려졌다. 그리고 며칠 뒤 포셋 목사는 큰 감동을 느끼며 "주 믿는 형제들"을 작사하였다.

사람들이 이 찬송가를 즐겨 노래함으로써, 이 세상에서 치른 가난의 희생은 풍요롭게 갚아졌다. 포셋 목사와 요크샤 시골 주민의 정은 50년 이상이나 이어졌다.

이 찬송가는 전 6절이다. 우리나라 찬송가에는 4절까지 실려 있다. 5, 6절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영광의 소망이 용기를 북돋네. 믿음의 형제자매들 주의 날 보리라"(5절). "아픔과 죄에서 자유를 얻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영원히 살리라"(6절).

포셋 목사는 평생 동안 웨인스게이트 교회의 적은 보수를 감사하게 받으며 마을 사람들을 꾸준히 사랑하였다. 그러는 중에 뜻하지 않은 곳으로부터 시골 교회 목사 포셋에게 큰 명예가 주어지게 되었다.

대서양 건너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 프로비덴스의 브라운 대학은 1811년에 포셋 목사에게 신학박사 학위를 수여하였다. 시와 산문 등으로 엮어진 여섯 권의 저작이 포셋 목사의 명성을 높인 데 따른 결과였다.

이 찬송가는 원래 성도의 교제를 찬송한 것이지만, 구미 교회에서는 성찬식 때 즐겨 부르고 있다.

이 찬송가의 작곡자 한스 게오르그 네겔리(Johann Hans Georg Nageli)는 스위스 취리히 근방 베테치콘에 살았다. 그는 악보 출판업을 하는 음악가였다. 그는 베토벤의 친구로서 그의 작품 여러 곡을 출판하였다. 또한 오랜 기간 동안 스위스 음악보급협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미국 음악계의 거물이며 특히 교회음악의 제일인자인 로웰 메이슨은 1837년에 유럽을 여행하며 네겔리의 이 '데니스'를 발견하였다. 메이슨은 이미 이 찬송가에 곡을 붙여 '보일스턴'이라고 하였었으나, 자기의 곡은 폐기하다시피 하고, 네겔리의 '데니스'를 편곡하였다. 우리가 부르는 "주 믿는 형제들"은 그 곡이다.  H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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