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짐 맡은 우리 구주(369장)

죄짐 맡은 우리 구주(369장)

[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 ] <33>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09년 09월 02일(수) 16:04

작사 : J. 스트라이븐 / 작곡 : C. 콘버스


캐나다 토론토 근방 포트호프에서 북쪽을 향해 달리는 고속 도로 옆, 온타리오 호수 호반에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진 기념비가 서 있다.

"4마일 북쪽, 펜게리 묘지에 / 박애주의자이며, 또한 / 1857년, 포트호프에서 작사된 / 위대한 걸작의 작자가 잠들어 있다." 그리고 잇따라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369장)의 찬송가 가사가 이어진다.

스크라이븐(Joseph Scriven)은 자기의 재능을 자랑하는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 찬송가는 자칫 햇빛을 보지 못할 뻔하였다. 찬송가 작자 생키는 "스크라이븐은 고향 아일랜드에 계신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하여 이 찬송시를 썼던 것이며, 세상에 발표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말하였다. 스크라이븐은 이 찬송시를 쓰게 된 동기에 관해 질문을 받으면, "주께서 나와 함께 작사하였소"라고 대답하곤 하였다.

이 찬송가가 유명해진 것은 생키가 이 찬송가를 블리스와 공동으로 편집 중이던 찬송가집 '복음성가집'(1875)에 수록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작곡자 콘버스의 작품 중 다른 한 편을 빼고 이 찬송가를 대신 수록하였다.

훗날 생키는 "내가 편찬한 '복음성가집'에 마지막으로 수록된 이 찬송가가 가장 사랑을 받는 노래가 되었다"고 말하였다. 그 이후 이 찬송가는 많은 교회에서 새 신자에게 맨 처음 가르치는 찬송가 중 한 편이 되었다.

조셉 스크라이븐은 큰 슬픔을 지니고 살았다. 아일랜드에서 출생하여 더블린에서 대학을 나온 그는 1845년 캐나다에 와서, 온타리아 주 포트호프에 정착하였다. 그 곳에서 스크라이븐이 당한 비극에 관해 생키는 이렇게 말하였다. "스크라이븐의 약혼녀는 결혼식 전날 밤 사고로 물에 빠져 죽었다. 이 불행한 사건에 의해 그는 자기 생애와  모든 재산을 주님께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무료로 봉사하였고, 아무도 모르게 봉사하는 것을 기쁘게 여겼다."

어느 부자가 자기 집을 수리하려 할 때 스크라이븐이 목수 연장을 들고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 부자는 생키에게 스크라이븐을 소개해 달라고 청하자 생키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저 사람을 고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가 목수일을 하는 것은 돈이 없는 가난한 과부든가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만을 위해서입니다".

스크라이븐의 많지 않은 친구들과 그가 도운 사람들이 스크라이븐을 기리기 위하여 라이스 호수 근방에 기념비를 세웠다. 그는 사람들의 강권으로 그 곳에서 살았으나 그 기간은 짧았다. 스크라이븐도 1886년에 그 호수에서 사고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였다.

그 기념비에는 그가 지은 유일한 찬송가 '죄짐 맡은 우리 구주'의 가사가 새겨져 있다. 지금도 해마다 많은 사람들의 그의 무덤을 찾고 있다. 

"시험 유혹 당하여서, 근심 걱정 있는가 / 소망의 주 예수 앞에, 기도하여 아뢰라 / 우리들의 모진 슬픔, 나눌 사람 있는가 / 모든 슬픔 알고 계신, 주 예수께 아뢰라"(2절). "이 세상의 근심 걱정, 풍파처럼 닥칠 때 / 피난처가 되신 주께, 기도하여 아뢰라 / 세상 친구 멸시하나, 기도하여 아뢸 때 / 주의 품에 안기워서 평화로움 얻겠네"(3절)  HBK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