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신학사상

3. 신학사상

[ 연재 ] <9> 계일승목사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09년 08월 18일(화) 17:29
김인수/미주장신대 총장

계일승박사는 목사로서 일선에서 목회를 한 일도 있었지만, 교수, 학자, 신학 행정가로 그 일생을 신학교육에 헌신하였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목회자, 선교사, 학자, 교회 행정가로 일하는 이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계 박사는 교육 일선에서 헌신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를 대표하여 세계적인 모임에 여러 번 참석하였다. 1950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모인 세계기독교종교교육대회에 한국교회 대표로 참석하였고, 1954년 홍콩에서 모인 제1회 아시아에큐메니칼 선교협의회에도 참가하여 한국교회의 위상을 높이는데 공헌하였다. 1956년 방콕에서 모인 동남아시아 신학자대표회의에, 그리고 동년 방콕에서 모인 제3회 ACEM 대회에, 1957년 인도네시아에서 모인 아시아기독교대회, 1957년에 홍콩에서 모인 제4회 ACEM 회의 등에 참석하여 한국교회의 괄목할 만한 성장과 아시아에서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계 박사는 학자였지만 혼란기에 학교 경영의 일선에서 행정에 몰입하면서 학자로서 많은 저서를 내어 놓지 못했다. 계 박사의 전공은 역사신학, 그 중에서도 한국교회사였다. 그가 버지니아 유니온신학교에서 쓴 논문이 바로 한국교회사였다. 교회역사하면 서양교회사를 의미하던 시절에 그는 한국교회의 역사를 정리하여, 한국교회사학을 정리하고 정초하는 역할을 맡아 이행하였다. 1920년말 연세대학교 백낙준박사가 예일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논문으로 제출한 'History of Protestant Missions in Korea 1882-1910'(이 논문은 후에 연세대학교 출판부에서 '한국개신교사'라는 제목으로 출판됨)에서 처음으로 한국교회의 역사를 정리하였다. 그러나 이 책은 제목에서 보는 것과 같이 초기에서 1910년까지의 역사만을 정리했고, 또 1920년대에 쓴 것으로 주로 선교사들의 자료에만 의존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계 박사의 논문은 일단 그가 1950년에 논문을 제출하였으므로, 백 박사보다 약 30년 이후의 역사를 포괄하고 있고, 선교사 쪽 자료뿐만 아니라 한국 쪽 자료도 포함하고 있어서 균형잡힌 시각으로 한국교회의 역사를 정리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교회사라는 말 자체도 생소한 시절에 계 박사는 선구적으로 이 분야의 길을 넓게 열어 두어 후에 한국교회사를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해 주었다. 요즘 한국교회사를 전공한 많은 사람들과 그들이 쓴 논문, 책들은 백낙준박사의 논문과 계 박사의 논문을 참조 하지 않을 수 없어서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해 주고 있다.

계 박사의 신학사상은 철저히 역사성에 기초한 신학함이라 볼 수 있다. 그는 교회가 걸어온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그 역사가 오늘에 주는 교훈과 나아가야할 방향성을 예리하게 추적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역사는 철저히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인도하시고, 이끌어 주신다는 확고한 신앙의 관점에서 역사를 살피고 있다.

계 박사는 1971년 학장직에서 퇴임하고 명예학장으로 추대되어, 혼란기의 조정자와 기초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신학교를 떠났다. 그는 슬하에 3남 4녀를 두었는데, 그 장남 계지영박사는 부친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었고, 교수가 되었다. 서울대 사학과를 나와 미국 클레어몬트신학교에서 설교학으로 박사학위(Ph.D.)를 받은 후 일생동안 목회와 교수를 계속하고 있는데, 은퇴한 후에도 미국 로스엔젤러스에 있는 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계 박사는 한국교회가 내세울 수 있는 훌륭한 목회자, 신학자, 행정가로서 그의 생을 바쳤다. 지병으로 장기간의 투병생활을 한 끝에 그는 1992년 8월, 86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내가 죽거든 내가 목회하던 황등 땅 햇빛 따사로운 곳에 묻어 달라"던 소원대로 장로회신학대학 장(葬)으로 거행된 예식이 끝나고 바로 황등으로 떠나 황등교회 동산에 안정되었다. 그는 일제 강점기, 해방공간과 미군정, 자유당 정권, 그리고 군사정권 등의 민족과 국가가 혼란기를 이어 갈 때 그에게 주어진 임무를 훌륭히 감당하고 퇴장하였다. 어려울 때, 하나님께서는 쓰실 일꾼을 보내시어 일하게 하시는데, 계일승박사야 말로 하나님께서 혼란기에 우리 교회에 보내시어 교회와 신학교를 안정, 정착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한 그 시대의 주님의 일꾼이었다.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