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의 나라와(208장)

내 주의 나라와(208장)

[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 ] <27>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09년 07월 17일(금) 15:25

작사 : T. 드와이트 / 작곡 : A. 윌리엄스

찬송가는 개인적이 아니라 공통적인 성격을 지녀야 한다. 물론 개인의 작품인 이상 작사자의 내면에서 생겨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작사자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내용이어야 한다.

찬송가 '내 주의 나라와'(208장)는 미국 찬송가 역사의 처음을 장식하는 뛰어난 서정시이다.

이 찬송가의 성구는 디모데전서 3장 15절로 되어 있으나, 티모시 드와이트(Timothy Dwight)는 시편 137편의 정신에 입각하여 그 내용을 신약화하고, 교회 예배용으로 작사하였다.

1800년 무렵까지 미국 교회는 예배에서 시편가만 불렀다. 그후 영국 워츠의 찬송가와 병행하여 찬송하게 되었다. 미국의 바로는 자기 작품도 수록하여 '시편가와 찬송가집'을 출판하였다.

그러나 선곡이나 번역에 많은 결점이 있었고, 무엇보다 편집인 바로의 인격에 문제가 있었다. 때문에 코네티컷 지역의 장로교회와 회중파교회는 공동으로 찬송가의 전면적인 개정판 작성을 당시 예일 대학 학장 드와이트에게 의뢰하였다. 그는 24년 동안 작업하여 완성하였다.

1800년에 드디어 드와이트, 워츠판 '신편 찬송가'가 출판되었다. 그 안에 '내 주의 나라와'가 수록되었다. 이 찬송가는 '메이 플라워호' 이래 2백여 년 동안 창작된 찬송가 중에서 현존하는 단 한 편의 찬송가이다.

찬송가 작사자 티모시 드와이트는 1795년에 제8대 예일 대학 학장으로 선임되었다. 당시의 예일 대학은 날로 쇠퇴하고 있었다. 특히 기독교 학교로서의 창립 이념은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전교 학생 중 성찬식에 참예하는 교인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무신론자였으며, 옛 성인이나 성도들보다는 모든 면에서 자기들이 우수하다는 자만심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교육을 첫째 목표로 정한 드와이트 학장의 신념은 끊임없는 기도와 진지한 설득과 겸손한 자세로 인해, 절대적인 감화가 학교 전체에 걸쳐 미치게 되었다.

드와이트 학장은 1인 6역의 일을 감당하였다. 그는 논리학, 윤리학, 철학, 문학, 변론학, 신학과의 교수인 동시에 대학교회의 목사 및 학감의 일까지 하였다.

드와이트 목사의 감화는 곧 뉴잉글랜드의 다른 대학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그는 학교 바깥 사회에서도 사상계의 지도자로서 미국 전역에 큰 영향을 주었다. 사람들은 드와이트를 조지 워싱턴에 버금가는 국민적 은인이라고 칭송하였다.

4절, "성도의 교제와 교회의 위로와 구주와 맺은 언약을 늘 기뻐합니다"에서 창세기 28장 17절 말씀,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를 새삼 느끼게 된다.

드와이트는 1787년에 프린스턴 대학에서 신학박사, 1810년에는 하버드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817년 예일 대학의 소재지이며 그가 32년 동안 살던 뉴헤븐에서 임종하였다.

이 찬송가의 작곡자 아론 윌리엄스(Aaron Williams)가 1763년에 펴낸 '유니버셜 찬송가 작가' 제2판에 '내 주의 나라와'는 단선율곡으로 실려 있다. 그러나 1833년판과 1878년판 '찬송가'에는 작곡자가 헨델로 되어 있다. 오늘날에는 아론 윌리엄스가 작곡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HBK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