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구원하신 예수님(262장)

날 구원하신 예수님(262장)

[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 ]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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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4월 17일(금) 14:36

이 찬송가의 역사는 무려 1천년 가까이 된다. 작시자 클레르보의 베르나르가 지은 장시 '거룩한 예수의 이름'은 4행시 48절 총 1백92행에 이른다. 이 장시 중에서 임의로 5절을 가려뽑은 것이 "날 구원하신 예수님, 영원히 찬송하겠네"(262장)이다.

베르나르두스는 프랑스 디종 근방 성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독실한 신앙인인 어머니의 교육을 받은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호화로운 귀족 생활을 원하거나, 교회에서 명예로운 자리를 차지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가장 가난하고 가장 엄격한 훈련을 실시하는 수도원에 들어가겠다고 결심하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그는 시토 수도원 수도사가 되었다. 베르나르두스는 시토 수도회의 확장 방침에 따라 아우브 강 유역의 원시림과 황야로 에워싸인 '향쑥의 골짜기'에 수도원을 세울 계획을 하였다.

그는 도둑들의 소굴인 그곳에 하나님의 집을 세우기 위하여 우선 조그만 오두막을 지었다. 그곳 이름을 '햇빛의 골짜기'로 바꾸고, 잡풀과 나무 뿌리를 먹으며 굶주림과 싸워가며 일하였다.

호된 노동과 엄격한 수도의 고행을 견디며 건강을 해쳤으나, 베르나르두스는 수도사의 일과인 독서와 기도, 설교와 성경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 클레르보 수도원의 건립은 일반 사회의 농업과 토목과 건축 발달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어느 날 귀족 부인이 된 누이동생이 오빠 베르나르를 만나러 클레르보로 찾아 왔다. 화려하게 몸치장을 하고, 많은 하인과 하녀들을 거느리고 면회를 요청하는 누이동생을 베르나르두스는 냉정하게 거절하였다.

"정녕 내가 죄인일진대 내게는 더구나 오빠의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베르나르두스는 누이동생에게 마가복음의 한 구절을 인용하였다.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막 10:21).

주 예수를 찾아왔던 재물이 많은 사람과는 달리 베르나르두스의 누이동생은 그 즉시 그리스도를 따르는 생활을 하였다. 금식 기도 생활을 하였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였으며, 얼마 후에는 수녀원에 들어갔다.

"주 우리 죄로 인하여 피 흘려 죽으셨으니 / 주밖에 없는 사랑을 만백성 알게 전하세"

당시의 프랑스 수상 쉬제는 임종에 즈음하여 이 찬송가를 부르면서 베르나르두스의 이름을 불렀다. 또한 셸리 성당의 윌리엄 주교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게 만일 세상에서 가장 큰 특권이 주어진다면, 베르나르두스 수도원장 밑에서 하인으로 일생 동안 주님과 그를 섬기겠다."

베르나르두스는 평생 동안 자기 자신의 이익을 구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주 예수 사랑 못 잊어 나 항상 눈물 흘리네"의 생활을 하였다. 그는 임종에 즈음하여 이렇게 기도하였다.

"사랑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나는 죄 가운데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죽음의 고통과 죽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천국을 주셨고, 나를 위하여 천국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나는 기쁨과 위로 속에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H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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