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혁주의 신학자 박윤선

1. 개혁주의 신학자 박윤선

[ 한국 신학의 개척자들 ] <8> 박윤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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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4월 02일(목) 09:45

이상규 / 고신대 교수ㆍ역사신학

한국교회에는 몇 가지 신학적 조류가 있어왔다. 유동식은 그의 '한국신학의 광맥'에서 한국개신교 신학의 흐름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여 '보수적 근본주의 신학', '진보적 사회 참여의 신학', 그리고 '종교적 자유주의 신학'으로 대별하고, 보수적 근본주의 신학에 초석을 놓은 이로 길선주(吉善宙)와 박형룡(朴亨龍)을, 진보적 사회 참여의 신학의 초석을 놓은 이로 윤치호(尹致昊)와 김재준(金在俊)을, 종교적 자유주의 신학의 초석을 놓은 이로 최병헌(崔炳憲)과 정경옥(鄭景玉)을 들었다. 위의 3가지 조류는 한국교회 신학의 태동기를 중심으로 구분한 것으로서, 그 이후의 한국교회 신학적 조류를 정교하게 구분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유동식의 분류를 따른다면 길선주와 박형룡으로 대표되는 보수적 근본주의 신학이 초기 한국교회의 신학이었고 한국교회 신학적 전통이 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굳이 박윤선을 위의 3가지 신학적 조류로 판단한다면 보수적 근본주의 신학에 근접하다고 볼 수 있으나 그는 한국에서 '개혁주의 신학'(Reformed theology)의 초석을 놓고 이 신학을 발전시켜온 대표적인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개혁주의 신학'은 보수적 근본주의 신학과는 다르다. 보수적 근본주의 신학은 1920년대 미국교회의 신학논쟁에서 분명하게 석명된 신학으로서 문화와 사회에 대한 분리주의적, 반지성주의적 성격이 있고, 문화에 대한 책임을 경시한다.

그러나 종교개혁 신학을 계승하되 칼빈, 아브라함 카이퍼, 바빙크로 연결되는 개혁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주권과 선택, 하나님의 영광을 신자의 삶의 목표로 여기기 때문에 개혁주의자들은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문화적 사명을 중시하는 신학이다. 이 신학이 한국교회 초기 선교사들의 사상에서 연원하지만 이 신학을 보다 분명히 해설하고 한국교회 현실에서 체계화 한 이는 박윤선(朴允善, 1905-1988)이었다. 박윤선은 40여 년간의 교육활동과 저술, 성경주석의 집필, 목회활동을 통해 개혁주의 신학을 소개하고 해명하고 석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개혁주의적 삶을 통해 한국교회에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에 대한 모범을 보여주었다. 이 글에서는 그의 삶과 신앙, 신학과 학문의 여정을 통해 한국교회 신학과 그 개척자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신학적 여정

박윤선은 1905년 12월 11일 평북 철산군에서 농부의 둘째 아들로 출생했다. 유교적 배경에서 성장한 그는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게 되는데, 암기력과 기억력이 비상하여 사서삼경을 줄줄 외웠다고 한다. 이런 한학에 대한 이해는 오늘의 신학자들이 갖추지 못한 특별한 자산이었다. 17살 때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신앙을 배우게 되고 향리의 기독교계 학교인 대동학교를 거쳐 오산학교서 1년간 수학하고 다시 양전백목사가 설립한 신성중학교에 전학하여 졸업하고 숭실전문학교에 진학했다. 이런 여정에서 신학공부를 결심한 그는 1931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였다. 1934년 신학교를 졸업하고, 두 차례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 유학하였다(1934-36, 1938-1939). 특히 이 기간 동안 메이첸(J. Gresham Machen, 1881-1937)의 문하에서 헬라어공부와 신학연구에 주력하였다. 박윤선는 2차 미국 유학 시에는 반틸(Conelius van Til)의 문하에서 변증학을 배웠는데, 반틸의 영향으로 신학이란 어떤 자연론적인 유추나 철학적 사변에서 출발하지 않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전제한 성경계시에서 출발하는 전제주의(presuppositionalism)에 기초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또 반틸의 신학이 근거하고 있는 바빙크의 교의학을 접하게 되는데, 이것은 바르트의 변증법적 신학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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