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복의 근원 하나님(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1장)

[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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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3월 19일(목) 11:46

작사 : T. 켄
작곡 : 제네바 찬송가(L. 부르조와)


스위스 제네바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존 칼빈의 종교 개혁은 개혁파의 새로운 교의(敎義)의 교회에 알맞는 새로운 찬송가를 탄생하게 하였다. 프랑스어 번역의 시편에 따른 '제네바 시편가'가 그것이다.

칼빈은 성경 말씀을 존중한 나머지 예배에 창작한 찬송가 사용을 금하였고, 시편에 곡을 붙인 시편가만 찬송가로 인정하였다. 일찍이 아우구스티누스가 "나의 시편, 나의 영혼"이라고 말한 바와 같이, 시편 1백50편이면 예배용 찬송가로 충분하다는 것이 칼빈의 견해였다.

곡의 경우도 제창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칼빈은 가톨릭의 기교적인 폴리포니(복선율) 곡이거나 오르간 곡, 그리고 독일 루터파의 코랄(중찬가)과 같이 인간이 창작한 가사에 따른 찬송가 부류는 일절 배제하였다.

클레망 말로와 같은 대시인도 칼빈에 동조하여 시편을 프랑스어로 번역하였고, 작곡은 루이 부르조와가 주도하였다. 그 중에는 '만복의 근원 하나님'과 같은 불후의 명곡이 있다.

이와 같이 개혁파의 교회 음악은 제창으로 부르는 시편가만 인정하였고, 시편 가사라 하더라도 다성 형식의 작곡은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다성 형식의 시편가는 "교회서는 부를 수 없고, 가정에서 하나님을 찬미하기 위한" 사적인 음악에 지나지 않았다.

이 제네바 시편가는 스위스의 프랑스어를 말하는 지역과 프랑스의 위구노(칼빈파)들이 불렀고, 그 영향은 네덜란드와 스코틀랜드 및 미국 뉴잉글랜드 식민지 등 칼빈주의 계열의 교파인 장로교회와 개혁교회에서 약 2백년 동안에 걸쳐 철저하게 지켜졌다.

'만복의 근원 하나님'의 작사자 토마스 켄 주교는 권위에 굴복하지 않고, 시련을 인내로 이기며 신앙을 지킨 것으로 유명하다. 가톨릭을 차지하는 제임스 왕이 성공회에 압력을 가하게 되자, 켄은 국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주교들은 해야 할 일이 두 가지 있습니다. 그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의무이고, 다른 하나는 폐하에 대한 의무입니다. 우리 주교들은 폐하를 존경합니다. 그러나 복종하는 대상은 오로지 하나님뿐입니다".

그 발언 때문에 켄을 비롯하여 7명의 주교들은 런던탑에 감금되었었다. 그러나 켄을 지지하는 대중들의 탄원서를 왕이 받아들여 사형을 면하고 석방될 수 있었다.

윌리엄 공과 메어리 여왕이 즉위했을 때에도 가톨릭인 그 두 사람에 대한 충성의 선서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켄은 주교직을 박탈당하였다. 충성스러운 주의 종 켄에 관하여 역사가 매콜레인은 이렇게 평하였다.

"켄은 다른 모든 면에서는 죽은 것과 다를 바 없지만, 하나님의 일에 관해서만은 살아 있다. 권력과 궁전과 성직권과 그리고 주교의 자리 등 전부를 내버렸으나, 오직 죽을 때 걸칠 수의만은 버리지 않았다. 그는 명상하면서 항상 성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켄은 임종하기 몇 해 전에 자기가 죽을 때 입을 수의를 마련해 두었다. 임종의 때가 다가오자 그는 자기 손으로 수의를 입고, 장례식은 소박하게 치르라고 당부한 후 숨졌다. 그 요망에 따라 그의 추종자 12명이 그의 시신을 프롬교회 묘지에 묻었다.  H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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