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박형룡 사상에 대한 연구들

3. 박형룡 사상에 대한 연구들

[ 한국 신학의 개척자들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09년 03월 19일(목) 11:45

최윤배 / 장신대 교수ㆍ조직신학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박형룡의 사상'이라는 주제는 뜨거운 감자들 중 하나다. 왜냐하면 박형룡의 사상에 대한 평가는 한국장로교회 내에서조차도 연구가의 신앙과 신학 성향과 소속 교단에 따라 흑과 백의 차이만큼이나 극명한 대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박형룡을 한국이 낳은 위대한 신학자요, 한국교회 신앙의 수호자며, 자유주의신학에 맞서서 '정통주의신학'과 '개혁주의신학'을 위해 싸운 투사로 칭하면서, 그를 영웅시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금권을 좇아간 교권주의자, 꽉 막힌 보수주의자, 한국장로교회의 분열에 앞장선 분리주의적 근본주의자로 칭하면서 그에게 손가락질한다.

지금까지 박형룡에 대한 대표적 학술발표논문집 중에 '신학사상' 제25집(1979년 여름호)과 '한국개혁신학' 제21권(2007년 4월) 등이 있으며, 저서들 중에서는 박용규가 편집한 '죽산 박형룡 박사의 생애와 사상'(총신대학교출판부, 1996)과 장동민의 '박형룡-한국 보수신앙의 수호자'(살림출판사, 2006) 등이 있다. 특히 박형룡 연구를 위해 도움을 줄 수 있고, 가장 최근까지 대부분의 참고문헌이 수록된 참고자료는 최정자의 신학박사학위논문, '박형룡의 신학에서 그리스도의 삼중직에 관한 연구'(평택대학교 Th.D., 2008)이다.

지극히 제한된 신문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박형룡에 대해 비전문가인 필자의 그에 대한 평가는 더 더욱 완전한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지금까지 박형룡의 사상에 대한 연구들을 종합하고, 연구정보를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으로서 필자의 소임을 다하고자 한다.

우리가 앞에서 그의 생애를 편리상 두 번을 나누어서 다루었듯이, 그의 사상도 두 번에 나눠 다루되, 먼저 그가 영향 받은 사상에 대하여 다루고, 나중에 그가 참여한 주요 신학논쟁을 중심으로 다루기로 한다.

서당에서 박형룡에게 한학을 가르친 유교 지식인으로서의 서당훈장은 서양학문과 기술에 긍정적인 시각을 가졌기 때문에,  그를 교회로 데려가 웅변을 배우도록 주선할 정도였다. 그러므로 박형룡은 한국인으로서 전통적인 유학을 배우면서도 전통적인 유교에 대한 비판적인 자세를 취할 수가 있었다. 그 결과 박형룡은 유교는 원래 유일신론을 가지고 있는 고등종교였는데, 음양사상이나 귀신론 등이 들어오면서 타락했다는 것이다.

박형룡은 청소년 시절에 초기 선교사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비롯한 기독교 기본교리를 배우고, 1907년 전후의 평양 대부흥운동에서 최봉석목사 등을 통하여 영적 체험을 했다. 또한 그는 숭실전문의 교수진들(배위량, 마포삼열 등)과 프린스턴신학교의 교수진들(핫지, 워필드, 특히 메첸 등)과 루이빌 남침례신학교의 교수진들(로버트슨, 멀린스 등)로부터 영향을 받아, 소위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신학'을 터득하고, 메첸이나 멀리스 등으로부터 변증학을 깊이 배웠고,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변증신학자 판 틸(van Til)의 변증적 사상에도 깊이 공감했다.

그의 철학박사학위논문도 변증학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그의 조직신학 시리즈 7권을 읽어보면, 그 자신이 발전시킨 별도의 내용은 많지 않고, 루이스 베르코프의 조직신학의 내용을 주로 따르면서, 슐라이어마허 이후의 대부분의 현대 신학자들의 사상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전천년설주의자인 박형룡의 신학사상은 루이스 베르코프의 신학사상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체적으로 일치한다. 그의 글의 상당 부분은 자신이 이해한 '정통신학'에 입각하여, '비정통신학'에 대한 변증적인 어조를 띠고 있고, 한문체의 글로 인해 한문에 익숙지 않은 오늘날 젊은이들에게는 매우 난해하다.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