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술적 가치 지닌 '비교종교론'

4.학술적 가치 지닌 '비교종교론'

[ 한국 신학의 개척자들 ] <6> 채필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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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2월 26일(목) 13:59

이진구교수(호남신대 초빙교수, 종교학)

채필근은 90여 년의 생애 동안 수많은 설교와 강연을 하고 잡지나 신문 등에 많은 글을 기고했지만 단행본으로 출판한 것은 거의 없다. 그가 남긴 몇 권의 저서 중에서 가장 학술적인 가치를 지닌 것은 '비교종교론'(1959)이다. 이 책은 최근까지도 여러 신학교에서 비교종교학의 교재로 사용될만큼 널리 읽힌 책이다. 그러나 채필근은 이 책이 매우 불완전하고 결점이 많다고 고백하고 있다. 본래는 책의 제목을 '비교종교학'으로 하려고 했지만 '비교종교론'으로 정했다고 한다. '학'자를 붙이려면 최신의 연구성과를 반영하고 참고서적도 충분했어야 하는데 상황이 여의치 못해 '론'자를 붙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월남하면서 수천 권의 장서를 다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70세가 넘은 나이에 집필하다 보니 기억력 감퇴 현상도 나타나 감히 '학'자를 붙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 채필근의 솔직하고 겸허한 성품을 다시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다양한 종교전통들에 대한 소개와 비교 작업으로 되어 있다. 그의 용어법에 따르자면 유교와 도교, 힌두교와 불교, 조로아스터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과 같은 '큰 종교'와 자이나교, 마니교, 바하이교, 모르몬교, 단군교, 천도교와 같은 '작은 종교들'이 소개되고 있다. 이 종교전통들의 등장 배경, 교조, 경전 및 사상, 역사 등을 순서에 따라 서술함으로써 비교의 효과를 드러내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본격적인 비교 작업은 기독교와 불교의 비교에서 나타나고 있다. 채필근은 불교와 기독교의 유사성과 차이성을 각각 20여 개 씩 들고 있다. 오늘날 비교종교학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비교작업은 매우 단순하고 피상적인 작업으로 보일 수 있다. 두 종교의 유사성의 배후에 있는 차이나 차이성의 이면에 있는 공통성이 심층적으로 파악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채필근의 '비교종교론'에는 이처럼 내용의 측면에서 수정되어야 할 부분이 많이 있지만 비교 작업에 임하는 그의 태도에는 오늘날에도 본받을만한 점이 있다. 그는 책의 앞머리에 '사과의 말씀'이라는 란을 두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저자는 그리스도교의 신자라는 것을 맨 먼저 말씀드려 둡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공평무사한 태도를 가지고 싶어도 모든 종교를 그리스도교적 견지에서 고찰하고 비평하게 될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그리스도교 외에 다른 종교를 신봉하는 분이 이 책을 보신다면 남의 종교를 잘 알지도 못하고 비평하였다든지 근본적으로 불공평한 독선적 태도를 가졌다고 비난하실 줄 압니다. 그러나 여기에 관하여서는 자리를 바꾸어 생각해 보시고 관대히 용서해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자신의 비교 작업이 기독교적 호교론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타종교인들이 널리 이해해 달라고 양해의 말씀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기독교인들에게는 "다른 종교를 소개하고 비판하는 방면이 너무 빈약해지고 그리스도교를 변호하고 내세우는데도 대단히 부족해졌다"고 하면서 또 다른 양해를 구하고 있다. 이러한 비교작업은 양측으로부터 비판받을 수 있지만 오히려 이러한 비교의 태도야말로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도 타자에 대한 개방성을 유지하는 태도로서 다종교, 다문화 시대에 접어든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경청해야 할 자세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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