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여(8장)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여(8장)

[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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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2월 04일(수) 16:55

작사 : R. 히버
작곡 : J.B. 다익스

레지널드 히버를 두고 "교회 음악을 발전시켜야 할 사명을 띠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말한 사람이 있다. 영국의 계관시인 테니슨은 히버가 작사한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여'를 가리켜 '가장 위대한 찬송가'라고 평하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다. 옥스퍼드 대학 시대에는 여러 번 라틴어와 영어의 글짓기에서 장원을 하였다. 특히 그가 가장 의의 있게 생각한 것은 '팔레스티나'라는 시로 장원을 차지한 일이었다.

히버가 대학 졸업식에서 이 시를 낭송했을 때 청중은 뜨겁게 박수하였다. 그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졸업식이 끝난 후 귀가하고 나서, 그의 어머니는 치하하기 위해 아들의 방문을 열었다. 히버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하고 있었다.

히버는 학업을 마친 후 고향 호드넷 교회의 목사로서 16년 동안 봉사하였다. 그는 목회하는 동안 찬송가에 관심을 가졌고, 자기 자신도 시인 스콧과 바이런의 감화를 받아 문학적인 향기 높은 찬송가를 지었다.

그는 모든 찬송가가 갖추어야 할 요건으로서, 곡이 장중하고 가사가 쉬우면서도 문학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노래할 때 주 안에서 온화하고 평화로운 느낌을 주는 것이 좋은 찬송가의 요소라고 말하였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송가이기 위해서는 "거칠고 속된 말을 써서는 안 되며, 인간의 감정을 흥분하게 하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 이유에 관해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인간의 더러운 입술로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감히 다가갈 수 있겠는가. 아가페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에로틱한 감정으로 그 거룩하신 이름을 부르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1823년에 히버는 인도 칼커타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의 교구는 인도뿐 아니라 실론 섬과 호주 전체 지역에 미쳤다. 주교로서 해야 할 일은 너무 많았고, 더구나 그 기후는 견디기 어려웠다.

"가장 조건이 좋은 방에 있어도 땀이 굵은 빗발처럼 흘러 내린다. 아무리 좁은 틈새라 하더라도 풀무불과 같이 뜨거운 공기가 밀려 들어온다. 창문을 모두 닫아도 방안은 후끈거렸고,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히버는 인도에 부임한 지 3년만에 건강을 잃었고, 1826년 43세의 한창 나이로 죽었다. 그 1년 후 미망인과 친구들에 의해 전 57편에 이르는 그의 찬송가집이 출판되었다. 그 중에는 "저 북방 얼음 산과"(507장)도 들어 있다.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님"의 작곡자 존 바커스 다익스는 찬송가 작곡가의 제일인자로서, 약 3백 곡의 찬송가를 남겼다. '니케아'라고 이름붙여진 이 곡은 가사와 곡이 신앙적으로 완전히 융합되어 있다.

다익스는 가사 중 "성삼위일체"라는 낱말이 다익스의 마음에 주후 325년, 소아시아의 니케아에서 열렸던 교회 회의를 상기하게 하였다. 그 회의에서 아리우스파는 배제되고, 아타낫우스파가 정통으로 인정되었다.

니케아 회의에서 채택한 신앙 고백에는 '삼위일체' 교리가 기독교 신앙에서 굳게 지켜야 할 신조 중 하나로 규정되어 있다.  (H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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