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넓고도 깊은 그의 학문적 이력

3. 넓고도 깊은 그의 학문적 이력

[ 한국 신학의 개척자들 ] 한국신학의 개척자들 <5> 이성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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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1월 14일(수) 16:39

하경택교수/서울장신대 구약학

이성휘교수는 1928년 1월 '신학지남'에 '신명기 강해' 연재를 시작으로 1940년 9월 '출애굽기 강해'를 연재할 때까지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쳤다. '신학지남'은 1918년 3월에 창간된 평양신학교 기관지로서 1927년까지는 계간으로, 그 뒤로는 격월간으로 나오다가 1940년 9월호(제22권 5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되었다.

이성휘교수도 '신학지남'의 집필진으로 참여하였는데, 그의 저술활동 가운데 특이한 점은 1930년 1월부터 1933년 7월까지 '신학지남'에 '천문강요'를 연재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숭실전문학교 천문학과를 졸업한 것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의 강의를 들었던 이들은 그가 특히 창세기와 천문학에 권위가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그의 강의는 넓고 깊으면서도 오묘한 맛이 있었으며 그의 발음은 정확하고 변재가 다양하여 호응이 좋았다"고 기억한다. 한편 아들 이세열목사의 증언에 따르면 이성휘교수는 평양신학교 교수 사택에 망원경을 설치해 놓고 학생들을 불러 모아 실습하곤 했다고 한다. 또한 이성휘는 1932년 '신학지남'에 게재한 '고고학 강해'를 통해 당시 성서비평학에 대응하여 전통적인 신학적 입장을 대변하였다.

이성휘교수는 '신학지남'에 몇 권의 책들에 대한 강해를 연재하였다. 가장 먼저는 1928년 1~5월에 세 번에 걸쳐 '신명기 강해'를 연재하였다. 그 이후 이성휘교수는 1928년 7월부터 1932년 1월까지 스물한 번에 걸쳐 '히브리서 강해'를 연재하였고, 히브리서 강해가 끝나자 '아가서 강해'를 1933년 9월부터 1935년 11월까지 총 열세 번에 걸쳐 연재하였다.

이어서 1936년 1월부터 1939년 9월까지 '출애굽기 강해'를 연재하였으나 1940년 '신학지남'이 폐간됨에 따라 출애굽기 강해를 완성하지는 못했다. 결국 그는 신명기, 히브리서, 아가서, 출애굽기 등 네 권에 대한 강해를 시도하였지만, 히브리서와 아가서만 완결할 수 있었다. 그 후 '아가서 강해'는 이성휘에 의해 수정보완되어 박형룡의 전도서 강해와 나부열의 잠언 강해와 함께 묶여 1939년 '표준성경주석 잠언 전도 아가'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한국교회는 학문적인 영역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훌륭한 선배들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료 부족으로 그들의 삶이나 저작에 접근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에서 평양신학교 한국인 교수들의 글들을 찾아내어 현대 독자들이 읽기에 편한 형태로 엮어낼 계획을 세우고 그 결실을 보게 된 것은 무척 기쁜 일이다.

지난 2004년 '한국 최초의 신학자 남궁혁의 로마서 강해'를 펴낸데 이어 2005년에는 '가시떨기나무 속의 말씀, 평양신학교 첫 한국인 구약학교수 이성휘의 구약성경 강해'(책임편집 박동현)를 펴내어 이성휘교수의 학문적 업적을 부분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게 되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의 글들을 현대 독자들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작업은 과거 훌륭한 족적을 남겼던 선배들의 유산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작업들은 계속되고 더욱 활발히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구약학자로서 다루고 싶은 책들이 많았을 터인데 이성휘교수가 신명기, 아가서, 출애굽기를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이것에 대한 직접적인 자료가 없지만 그가 남겨놓은 글을 통해 그 이유를 추정해보고 그의 신학적 성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우선 신명기 강해를 살펴보면 총론을 다룬 글로서 책 이름에서부터 간략한 내용분해에 이르기까지 신명기 이해를 위한 기초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는 신명기의 의미를 '제2율법'이 아니라 '율법복습'으로 이해하고 소가 먹은 것을 되새김질하는 것에 비유한다. 그리고 신명기의 기록 목적을 당시 남아있는 세대들이 조상들과 같이 불순종하여 광야에서 죽은 것을 거울삼아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약속의 땅에 들어가 잘 살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특별히 모세를 뛰어난 애국자요 정치가요 법률가요 역사가요 작가요 종교가라고 평하는 부분에서 당시 한국사회에 절실히 요구되었던 민족을 이끌 신앙의 지도자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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