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창/제5공화국

데스크창/제5공화국

[ 연재 ]

김훈 기자 hkim@kidokongbo.com
2005년 05월 23일(월) 00:00

20세기 초 평론가 A.C. 브래들리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사람들은 맥베스를 보면서 죄 지은 인간의 어두운 심연이 보여주는 처참함과 인과응보에 깊은 감명을 받는 동시에 어느덧 맥베스와 공범이 되어 있는 자신을 깨닫게 된다. 작가 또한 맥베스를 쓰면서 죄의 무한함을 더욱 심오하게 느꼈을 것이다."

MBC가 주말에 방영하는 드라마 제5공화국이 여러가지 화제를 낳고 있다. 월요일 출근한 직장인들의 화제가 주말 스포츠에서 어느 때부턴가 이 정치 드라마로 옮겨갔다. 이 드라마는 비교적 최근의 역사를 다루는 데다가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살아있다는 점에서 여러가지 위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딜레마는 선과 악 중에서 하필이면 악을 주인공으로 한다는 데 있다. 주인공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물론 독재 정권 시대를 대표하는 이들이 한꺼번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흔히 드라마에서 역사를 다룰 때 재해석이 문제가 되곤 한다. 역사의 패자였던 궁예와 견훤을 새로이 부각시켰던 '태조 왕건'이나 지금도 최고의 시청률을 올리고 있는 '해신'의 '장보고'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제5공화국의 경우 재해석을 한다는 자체가 역사의 악역들을 미화하는 더 큰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 12.12 군사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항쟁 등을 촉발했던 그 주역들이 아직도 이 땅을 활보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 드라마가 갈 길은 오직 있었던 사실 그대로의 재현밖에는 다른 길이 없지 않을까.

모름지기 드라마란 주인공을 응원하도록 만들어진 이야기인데 이 드라마는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면 할수록 이런저런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제5공화국 시청자 게시판에 벌써부터 '전사모'(전두환을 사랑하는 모임)를 만들자는 글이 올라오는 등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당시의 역사를 모르는 젊은 세대들이 드라마적인 요소에 강한 인상을 받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가볍게 넘길 수도 있으나 글 중에는 '시대가 필요로 하는 진정한 지도자'라는 등의 황당한 표현도 있어 뒷맛이 개운치 않다. 실제와 허구 사이를 오가는 아슬아슬한 균형은 자칫 제작진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곧 역사 왜곡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맥베스는 파국을 맞고 죽어가며 "남은 것은 허무뿐"이라고 읊조린다.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이 드라마에서 국민들은 허탈감이나 또 다른 상처 받기를 원치 않다는 것을 제작진이 이미 눈치채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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