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예배 ] 2024년 8월 30일 드리는 가정예배
정경환 목사
2024년 08월 30일(금) 00:10
|
▶본문 : 사도행전 21장 19~20절
▶찬송 : 17장
바울이 야고보와 장로들에게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했다(19절). 보통 선교보고는 파송교회에 간단히 하는데, 보고할 의무가 없는 예루살렘 교회에 그것도 구제헌금을 전달받아야 할 교회에 서면보고, 약식 보고도 아니고, 낱낱이,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자세히 구체적으로 정확히 말했다. 대충 하지 않았다. 적당히 하지 않았다.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자기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았고, 복음 전할 때마다 유대인들로 말미암아 곤욕을 치르고 죽음의 위협에 시달렸으니, 심지어 루스드라에서는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온 유대인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기까지 했는데(행14:19) 뭐가 아쉬워서, 무슨 덕을 보겠다고 낱낱이 말한단 말인가? 선교를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고 안수하여 보낸 수리아 안디옥 교회라면 몰라도.
요즘 단기 선교를 다녀오면 찬조해 주신 분들에게 작은 선물을 돌리고, 재정보고는 당회에, 사역보고는 주로 은혜 받은 일 중심으로 찬양예배 중에 하는 것이 보통이다. 오히려 장황하게 길게 모든 것을 다 말하면 눈치 없는 사람, 남의 시간 빼앗는 사람, 자기 자랑이 많은 사람, 말 많은 사람, 경계해야 할 사람, 약간의 거리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여김 받기 쉽다. 해서 3~5분 이내로 짧게 은혜로운 찬양을 배경으로 재미있는 영상과 잘 나온 사진 몇 장을 광고시간에 간단히 보여주는 것이 센스 있는, 현대인의 감각에 맞는, 멋진 보고다.
바울은 동족에 대한 배신감으로 적개심을 품고 아예 유대인들을 상대하지 않거나,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해 일부러 골라서 이방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차별 없이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했다(행20:21). 바울은 동족에 대한 사랑 때문에 얼마나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었는지 이렇게 편지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3)."
증언은 필요한 것만,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간추려서, 부분적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사실을, 본 것을 빠짐없이 전부 다 말해야 한다. 묻는 것만 자기에게 피해가 없도록 선별해서 말해서는 안 된다. 감추거나 빼거나 더하거나 해서는 안 된다. 정확히 말해야 한다. 얼버무리거나 대충 해서는 안 된다. 감정에 겨워서 호소하듯이 해서는 안 된다. 객관적으로 모든 것을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봉사활동, 새번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했다. 증언했다. 말로만 입으로만 아니라, 모든 겸손과 눈물,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김(행20:19), 장막 짓는 노동과 수고, 헌신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사람)만 아니라 이방(사람 포함, 짐승, 환경, 사상, 문화, 가치 등) 모든 것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했다.
하나님이 하신다. 시작도 과정도 마무리도.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사용하셔서 선하게 기쁘게 일하시고 온전히 영광을 받으신다. 고난도 귀하다. 아픔도 귀하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신다. 악을 선으로 바꾸신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열매 맺게 하신다. 기쁨과 감사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나님이 다 하신다. 다 이루신다. 소년의 작고 보잘것없는 도시락을 통해서도.
오늘의 기도
주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모든 것을 사용하셔서 선하게 일하시고 온전히 영광 받으소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에 작은 신음까지 사용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정경환 목사/증산제일교회
▶찬송 : 17장
바울이 야고보와 장로들에게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했다(19절). 보통 선교보고는 파송교회에 간단히 하는데, 보고할 의무가 없는 예루살렘 교회에 그것도 구제헌금을 전달받아야 할 교회에 서면보고, 약식 보고도 아니고, 낱낱이,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자세히 구체적으로 정확히 말했다. 대충 하지 않았다. 적당히 하지 않았다.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자기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았고, 복음 전할 때마다 유대인들로 말미암아 곤욕을 치르고 죽음의 위협에 시달렸으니, 심지어 루스드라에서는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온 유대인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기까지 했는데(행14:19) 뭐가 아쉬워서, 무슨 덕을 보겠다고 낱낱이 말한단 말인가? 선교를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고 안수하여 보낸 수리아 안디옥 교회라면 몰라도.
요즘 단기 선교를 다녀오면 찬조해 주신 분들에게 작은 선물을 돌리고, 재정보고는 당회에, 사역보고는 주로 은혜 받은 일 중심으로 찬양예배 중에 하는 것이 보통이다. 오히려 장황하게 길게 모든 것을 다 말하면 눈치 없는 사람, 남의 시간 빼앗는 사람, 자기 자랑이 많은 사람, 말 많은 사람, 경계해야 할 사람, 약간의 거리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여김 받기 쉽다. 해서 3~5분 이내로 짧게 은혜로운 찬양을 배경으로 재미있는 영상과 잘 나온 사진 몇 장을 광고시간에 간단히 보여주는 것이 센스 있는, 현대인의 감각에 맞는, 멋진 보고다.
바울은 동족에 대한 배신감으로 적개심을 품고 아예 유대인들을 상대하지 않거나,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해 일부러 골라서 이방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차별 없이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했다(행20:21). 바울은 동족에 대한 사랑 때문에 얼마나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었는지 이렇게 편지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3)."
증언은 필요한 것만,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간추려서, 부분적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사실을, 본 것을 빠짐없이 전부 다 말해야 한다. 묻는 것만 자기에게 피해가 없도록 선별해서 말해서는 안 된다. 감추거나 빼거나 더하거나 해서는 안 된다. 정확히 말해야 한다. 얼버무리거나 대충 해서는 안 된다. 감정에 겨워서 호소하듯이 해서는 안 된다. 객관적으로 모든 것을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봉사활동, 새번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했다. 증언했다. 말로만 입으로만 아니라, 모든 겸손과 눈물,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김(행20:19), 장막 짓는 노동과 수고, 헌신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사람)만 아니라 이방(사람 포함, 짐승, 환경, 사상, 문화, 가치 등) 모든 것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했다.
하나님이 하신다. 시작도 과정도 마무리도.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사용하셔서 선하게 기쁘게 일하시고 온전히 영광을 받으신다. 고난도 귀하다. 아픔도 귀하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신다. 악을 선으로 바꾸신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열매 맺게 하신다. 기쁨과 감사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나님이 다 하신다. 다 이루신다. 소년의 작고 보잘것없는 도시락을 통해서도.
오늘의 기도
주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모든 것을 사용하셔서 선하게 일하시고 온전히 영광 받으소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에 작은 신음까지 사용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정경환 목사/증산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