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

[ 가정예배 ] 2024년 8월 21일 드리는 가정예배

이신호 목사
2024년 08월 21일(수) 00:10

이신호 목사

▶본문 : 고린도전서 1장 22~24절

▶찬송 : 539장



'메멘토 모리' 이 말은 '당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그대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의미이다. 로마시대에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은 말 네 필이 끄는 전차를 타고 시내를 가로지르며 신과 같은 대우를 받는 퍼레이드를 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런데 이 마차 뒤에서 가장 비천한 노예가 끊임없이 장군에게 '메멘토 모리'를 외쳤다고 한다. 비록 지금은 전쟁에서 승리해 개선장군으로 환영받고 있지만 당신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며 결국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늘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에덴동산에서 뱀이 하와에게 물었을 때 하와가 뱀에게 이렇게 말했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창3:3)"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7)." 결국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게 되고 그 결과로 인간은 반드시 죽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인간이 죽는다는 말은 재판관 되신 하나님께서 사형을 선고하셨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재판정에서 제대로 된 변론 한 번 못해보고 모든 인간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하나님과의 최초의 약속을 깨뜨린 죄가 너무나 명백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정의로운 분이기에 선포하신 말씀을 다 이루시며 인간은 죄의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할 운명에 처했다. 한편,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비록 죄를 지었으나 하나님은 끝까지 인간을 사랑하셨다. 죄 때문에 마땅히 죽어야 했지만 하나님은 그런 인간을 용서하시고 회복시키고 싶어 하셨다. 사람을 지으셨을 때 에덴동산에서처럼 죄를 하나도 알지 못하는 모습으로 회복시키셔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하고 싶으셨다.

문제는 정의와 사랑, 이 두 가지 하나님의 속성이 서로 충돌한다는 사실이었다. 인간을 한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죄의 대가로 인간은 반드시 죽어야 하는 하나님의 정의가 충돌하는 난제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죄의 대가를 대신 지불해 줄 속죄 제물이 필요하게 되었다. 구약에서 가르쳐주신 번제와 속죄제 등에 사용되는 양과 송아지가 바로 그 속죄 제물이었다. 그러나 이 제물은 영원한 속죄의 효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이기에 인간은 매일 하나님께 번제를 드려야 했고 죄를 지을 때마다 또 희생 제물을 드려야 했다.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커서 인간을 영원한 생명으로 옮기고 싶으셨기 때문에 죽음의 권세를 궁극적으로 이길 수 있는 속죄양이 필요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예수님은 어떠한 죄의 영향도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인간의 모든 죄를 홀로 담당하실 수 있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님의 자기희생적 사랑으로 드러났고, 하나님의 정의가 인류의 죄를 대신한 예수님의 대속하신 죽음으로 드러났으며, 이 사랑과 정의가 십자가 위에서 만나 절묘한 균형을 이루게 되었다.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하나님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시는 궁극적이고 유일한 사건이 된 것이다.

'메멘토 모리.' 나는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는 것은 나 때문에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셨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내가 구원받는 은혜의 출발점이 된다.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받았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에게는 꺼림칙한 것이요, 헬라인의 관점에서는 지혜롭지 못한 미련한 사건이지만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그 앞에 나아가 무릎 꿇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가 된다.



오늘의 기도

구원의 하나님,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정의와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고 참된 구원의 능력을 누리며 전파하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신호 목사/덕신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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