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 가정예배 ] 2024년 8월 17일 드리는 가정예배

정경환 목사
2024년 08월 17일(토) 00:10

정경환 목사

▶본문 : 사도행전 21장 10~14절

▶찬송 : 357장



바울의 일행이 가이사랴에 있는 전도자 빌립의 집에 여러 날 머물고 있을 때,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했다.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11절)" 성령께서 직접 바울에게 말씀하시지 않고 왜 아가보를 통해 말씀하셨을까? 아가보는 왜 바울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일행들에게 얘기했을까? 말로 해도 충분할텐데 굳이 행동까지 보이며 전했을까?

유대인들에게 띠는 단지 풍채와 외모를 좋아 보이게 하고, 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무기나 도구를 차고, 귀중품을 보관하며, 그 길이로 부를 과시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때문에 속옷을 여미고 힘을 모을 수 있도록 힘껏 졸라 매야 했고, 느슨하거나 풀려 있거나 잃어버리면 게으르고 나태한 자, 어리석고 미련한 자, 본연의 기능을 상실한 자, 자기를 방어하지 못하는 자, 적에게 사로잡혀도 당연한 자로 여김 받을 수 있었다.

잠시였겠지만, 바울의 몸에서 떠난 띠는 그에게 어떤 의미, 어떤 느낌이었을까? 수치, 무력감, 홀가분, 황당함 등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사람들이 내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는데(행19:12) 복음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질끈 동여맸던 띠, 바로 그 띠가 나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지는 상징이 되다니 꽤나 수치스러웠을 것이다.

이내 다시 띠를 돌려받아 자신의 허리에 질끈 동여매면서 바울은 생각했을 것이다.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면서도,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했는데(행20:22) 이제는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고 하셨으니(행20:22) 믿음의 형제들이 울며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여 마음을 상하게 할지라도,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13절)."

우리는 띠를 볼 때마다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전적 무능을 본다. 이사야가 벗은 몸과 발로 행하여 보게 한 수치를 본다. 예레미야가 물가에 감추어 썩게 한 죄를 본다. 말로 해서는 안 되겠기에 땅바닥에 흙먼지와 함께 뒹굴던 선지자의 열심을 본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출 때 땅에 엎드러진 한 사내를 본다(행 9:3~4).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신 우리 주님을 본다(사11:5).

인생의 참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자랑도, 우리의 열심도, 우리의 각오도 불에 그을린 옷에 불과하다. 형제에게 버림받고 이방인의 손에 넘겨지면서도 고난의 잔 앞에서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셨던 주님의 의만이 우리의 의인 것이다. 우리의 자랑이다. 우리의 구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에게 가져다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 것이다(벧전1:13). 주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기에(14절) 우리는 지금의 고난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주 우리 아버지 하나님, 띠를 볼 때마다 나의 열심, 나의 헌신, 나의 자랑은 감추시고 인생의 참주인 되신 하나님, 공의로 행하시는 주의 열심만 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경환 목사/증산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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