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예배 ] 2024년 8월 10일 드리는 가정예배
임광혁 목사
2024년 08월 10일(토)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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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고린도전서 12장 1~11절
▶찬송 : 196장
누구나 한 번 이상은 그림 조각 퍼즐 맞추기를 해 보았을 것이다. 퍼즐 맞추기를 하려면 무엇보다 모든 조각이 다 있어야 재미도 있고, 원래의 그림을 볼 수 있다. 전체 조각 중 한 조각이라도 잃어버리면 뭔가 크게 비어 있는 듯 한 느낌을 갖는다. 그래서 잃어버린 조각을 빈자리로 빼놓고 맞추어 나가긴 하지만, 결국 비어 있는 조각 때문에 벽에 걸어두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 퍼즐 조각은 정해진 자기 자리에 있어야 완전한 그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내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에 있게 되면 어색하게 보이기도 하고,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다(4~6절)고 말씀한다. 성령의 은사는 결코 한 가지가 아니다. 본문이 말해주듯 성령의 은사는 여러 가지다. 로마서 12장에서도 여러 가지 은사들을 나열하고 있으며, 이 외에도 여러 은사들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사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받은 은사만이 진짜라고 해서도 안 되고, 내가 받은 은사만이 최고라고 해서도 안 된다.
오늘날에도 은사에 대한 잘못된 오해로 인한 문제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방언을 하게 되면 뭔가 달라 보인다. 그런데 방언을 통역하는 사람이 있으면, 방언하는 사람보다 더 위대하게 보인다. 예언하는 사람이 있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다닌다. 병 고치는 사람이 있으면 소문에 소문을 듣고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은사를 서열화시킨다. 신유의 은사나, 예언의 은사, 영분별의 은사가 다른 은사보다 뛰어난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소위 더 큰 은사를 사모한다. 물론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12:31)"는 말씀이 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받은 은사를 보면서 "내가 더 우월한 은사를 가져야 하는데... 내가 더 큰 은사를 받아야 하는데..." 하는 비교에서 비롯된 큰 은사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은사에 대해 말하면서 몸의 지체를 더불어 말하고 있음을 보라(고전12:21~23). 각 몸에는 여러 지체가 있는 것처럼, 은사도 여럿이고, 지체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은사도 성령 안에서 연결되어 있다. 몸의 모든 지체가 각각 중요한 것처럼, 모든 은사도 각각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은 은사가 없고, 더 귀하게 취급되는 은사도 없다.
은사는 성령께서 주시는 것이다. 성령께서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시는 것이다. 은사는 내가 잘 나서 주신 것이 아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행8:18~20). 은사는 성령께서 은혜로 주신 것이다. 이런 은사를 왜 우리에게 주실까? 은사 받은 사람들이 서로 협력해서 서로 돌보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것으로 자랑하게 하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니다. 교만하여 문젯거리가 되게 하려고 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교회에 유익을 주기 위해서, 영혼 구원하는데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해서 은사를 주셨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은사를 부러워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내가 받은 은사로 교만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은사를 통해 공동의 유익을 추구해야 한다. 온전히 성령 안에서 하나로 연합하여 자라나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면서 원하셨던 것이고, 우리에게 은사를 부여해 주신 이유이다.
오늘의 기도
우리는 큰 그림 안의 한 조각 퍼즐과 같은 작은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선물로 주신 은사를 삶의 자리에서 잘 감당하는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광혁 목사/청양늘푸른교회
▶찬송 : 196장
누구나 한 번 이상은 그림 조각 퍼즐 맞추기를 해 보았을 것이다. 퍼즐 맞추기를 하려면 무엇보다 모든 조각이 다 있어야 재미도 있고, 원래의 그림을 볼 수 있다. 전체 조각 중 한 조각이라도 잃어버리면 뭔가 크게 비어 있는 듯 한 느낌을 갖는다. 그래서 잃어버린 조각을 빈자리로 빼놓고 맞추어 나가긴 하지만, 결국 비어 있는 조각 때문에 벽에 걸어두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 퍼즐 조각은 정해진 자기 자리에 있어야 완전한 그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내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에 있게 되면 어색하게 보이기도 하고,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다(4~6절)고 말씀한다. 성령의 은사는 결코 한 가지가 아니다. 본문이 말해주듯 성령의 은사는 여러 가지다. 로마서 12장에서도 여러 가지 은사들을 나열하고 있으며, 이 외에도 여러 은사들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사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받은 은사만이 진짜라고 해서도 안 되고, 내가 받은 은사만이 최고라고 해서도 안 된다.
오늘날에도 은사에 대한 잘못된 오해로 인한 문제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방언을 하게 되면 뭔가 달라 보인다. 그런데 방언을 통역하는 사람이 있으면, 방언하는 사람보다 더 위대하게 보인다. 예언하는 사람이 있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다닌다. 병 고치는 사람이 있으면 소문에 소문을 듣고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은사를 서열화시킨다. 신유의 은사나, 예언의 은사, 영분별의 은사가 다른 은사보다 뛰어난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소위 더 큰 은사를 사모한다. 물론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12:31)"는 말씀이 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받은 은사를 보면서 "내가 더 우월한 은사를 가져야 하는데... 내가 더 큰 은사를 받아야 하는데..." 하는 비교에서 비롯된 큰 은사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은사에 대해 말하면서 몸의 지체를 더불어 말하고 있음을 보라(고전12:21~23). 각 몸에는 여러 지체가 있는 것처럼, 은사도 여럿이고, 지체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은사도 성령 안에서 연결되어 있다. 몸의 모든 지체가 각각 중요한 것처럼, 모든 은사도 각각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은 은사가 없고, 더 귀하게 취급되는 은사도 없다.
은사는 성령께서 주시는 것이다. 성령께서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시는 것이다. 은사는 내가 잘 나서 주신 것이 아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행8:18~20). 은사는 성령께서 은혜로 주신 것이다. 이런 은사를 왜 우리에게 주실까? 은사 받은 사람들이 서로 협력해서 서로 돌보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것으로 자랑하게 하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니다. 교만하여 문젯거리가 되게 하려고 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교회에 유익을 주기 위해서, 영혼 구원하는데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해서 은사를 주셨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은사를 부러워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내가 받은 은사로 교만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은사를 통해 공동의 유익을 추구해야 한다. 온전히 성령 안에서 하나로 연합하여 자라나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면서 원하셨던 것이고, 우리에게 은사를 부여해 주신 이유이다.
오늘의 기도
우리는 큰 그림 안의 한 조각 퍼즐과 같은 작은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선물로 주신 은사를 삶의 자리에서 잘 감당하는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광혁 목사/청양늘푸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