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이족에 사랑 전한 노(老) 목사의 식지 않는 선교 의지

마사이족에 사랑 전한 노(老) 목사의 식지 않는 선교 의지

[ 기획 ] 모금 통해 탄자니아 마사이족에 53채 현대식 집 지어준 김영곤 목사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24년 07월 02일(화) 09:04
지난 5월 12일 탄자니아의 아루사 마사이족 교회에 교인 200여 명과 면장 및 마사이 지역 책임자들, 주민, 학생 등 650여 명이 모여 김영곤 목사 부부와 함께 감사예배를 드렸다.
소똥으로 지은 집에서 살던 마사이족들은 현대식으로 개량된 자신들의 집을 보고 큰 기쁨을 표현했다. 개량된 집 앞에서 마사이족 가족들과 함께 한 김영곤 목사 부부.
지난 5월 12일,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아루사 마사이족 교회에 교인 200여 명과 면장 및 마사이 지역 책임자들, 주민, 학생 등 650여 명이 모였다. 한국에서 온 고령의 목사가 소똥으로 지은 열악하기 짝이 없는 자신들의 집을 현대식으로 고쳐준 것에 감격하면서 마을잔치처럼 진행된 이 예배는 장장 3시간 동안 이어졌다.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기쁨의 찬양을 부르고 춤을 추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 예배에 참석한 김영곤 목사(방파선교회 순회선교사)도 기쁨의 춤을 추는 마사이족들을 보며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기도를 올렸다. "하나님 늙고 힘 없는 이 종을 사용하여 이들의 삶의 터전을 변화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인생 86년만에 이렇게 보람된 순간은 처음입니다."

감사예배에서 소감을 전하고 있는 김영곤 목사.
#잊혀지지 않는 열악한 삶의 모습



지난 40여 년 방파선교회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며 선교 일념으로 살아온 김 목사는 은퇴 후에도 단체의 순회선교사로 임명 받아 선교사와 선교사역을 후원하고, 선교지를 방문해왔다.

김영곤 목사는 2004년, 2010년, 2017년 탄자니아를 총 3차례 방문한 바 있다. 그때 김 목사는 마사이족이 모여 살고 있는 지역인 엔카카레를 방문했는데 소똥으로 지은 집들을 보고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 열악한 집에서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가난으로 인해 인간 이하의 거주 조건에 살고 있는 마사이족들의 삶이 그의 뇌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자신은 정작 본인 소유 집의 주택연금으로 생활과 선교사역을 위해 감당하면서 86세의 김 목사는 결국 2023년 11월부터 마음 속의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고 '사고(?)'를 치기 시작했다. 그는 주변 지인들에게 SNS로 마사이족의 현실을 알리며 선교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집 한 채를 현대식으로 리모델링 하는 금액은 한국 돈으로 150만 원 정도. 소똥집 옆에 기둥을 세우고 양철로 지붕을 덮고 3000리터짜리 물탱크를 달아 주는 공사다.

제일 먼저 아내 임서희 사모는 60세를 기념해 선교 헌금을 하면서 남편의 선교열정에 동참했다. 그 다음엔 친구인 문영용 목사, 그 다음엔 전주의 목회자 유가족들이 주축이 되어 8채를 지원했다. 그 이후 은퇴 목사, 개척교회 및 타교단 목사 등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이들이 김 목사의 뜻에 동조해 후원을 해왔다. 김 목사의 자녀를 비롯한 가족들도 동참해 9채 건축을 할 수 있는 금액을 후원했다. 처음에는 10채 정도 지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추진한 모금이 여러 사람들의 참여로 20채가 되고 30채가 되더니 4월 말에는 53채까지 늘어났다.

우간다 선교지 방문.
김영곤 목사는 53채의 집이 거의 지어져 가자 탄자니아로 가서 현대식으로 개량된 집과 그 안에 거주하게 될 마사이족들이 보고 싶어졌다. 다리가 불편해 걷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휠체어를 타고서라도 그 기쁨과 감격의 순간에 동참하고 싶어져 선교 방문을 결단했다. 아프리카를 가는 김에 우간다, 케냐, 말라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선교지도 순회하며 선교사를 격려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4년동안 모은 적금 통장을 깨 1000만 원을 만들었다. 가족과 친척들도 650만 원의 후원금을 모아주었다.

김 목사가 아프리카 선교지에 간다는 이야기를 듣자 마사이족 집짓기에 후원하지 못한 이들 65명이 후원금을 보내왔다. 김 목사는 "후원금을 보낸 이들의 면모를 보면 비기독교인, 불교신자들, 타교단 목사들, 개척교회 여목사들, 은퇴 목사 및 장로들, 작은 선교회 등이다"라며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한국의 어떤 목사가 선교지에 간다고 이런 후원을 받겠는가? 모든 것이 주님의은혜"라고 감격을 표현했다.

인천공항에서부터 휠체어를 타고 10번이나 비행기를 갈아타는 일정이었지만 뜨거운 선교의 열정은 걷기도 힘든 86세의 노(老) 목사를 아프리카로 움직였다. 휠체어를 밀고 두 개의 큰 가방을 챙기는 모든 일은 아내의 몫이었지만 남편과 함께 하나님의 일에 참여한다는 동역자의 마음으로 불평 한마디 없이, 오히려 기쁨으로 그 일을 감당했다.



케냐 선교지 방문.
#"나라도 못해준 일, 감사할 뿐"



지난 12일 감사예배에서 마사이족 지도자들은 "김영곤 선교사님을 보내주어 마사이족을 위해 학교와 교회를 세위주신 한국교회에 감사한다"며 "우리는 한국이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큰 축복을 받은 나라로 알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나라를 더 사랑해 주기 바란다"고 감사를 표현했다.

또한, "마사이족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령인 86세의 나이에 모금을 해서 아름다운 집 53채를 지어 주신 김영곤 목사님께 감사 드린다. 이러한 일은 탄자니아 정부에서도 못한 일이다"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예배 후 김영곤 목사는 좋지 않은 건강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고요셉 목사와 함께 현지인 목사 부부를 대상으로 세미나를 인도하기도 했다.

말라위 선교지 방문.
탄자니아 일정 후 김 목사는 아내와 함께 우간다, 케냐, 말라위, 남아공 등 선교지를 방문하고 선교 현장을 돌아보면서 현지 선교사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남아공 케이프타운 선교지 방문.
비록 이 선교여행은 비포장도로 왕복 10시간을 가야 하는 험한 일정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출발할 때 이미 현장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마음이었기에 견뎌낼 수 있었고, 오히려 매순간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할 수 있었다고 김 목사는 고백한다.

끝으로 김 목사는 "사람은 보람된 일을 할 때 행복한 것이다. 오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하고 사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라며 "나는 말하고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주님 일을 할 것"이라고 여전히 꺾이지 않는 선교의지를 내비쳤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 마지막 부분에서 대형 청새치를 잡은 후 상어떼와 사투를 벌인 끝에 겨우 살아온 상처 투성이의 노인이 용맹과 투지의 상징인 '사자 꿈'을 꾸는 모습과 김영곤 목사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은 비단 기자만의 생각일까?


표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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