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민족의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선교사

하나님과 민족의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선교사

[ 땅끝편지 ] 카자흐스탄 방승수 선교사 ①

방승수 선교사
2024년 07월 02일(화) 01:41
2000년 6월 청주 서남교회에서 열린 '방승수·김지원 선교사 파송 감사예배'.
"나는 하나님과 민족의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선교사가 되겠습니다." 2000년 6월 23일 청주 서남교회 선교사 파송예배에서 충북노회원과 교인들 앞에서 각오를 피력했다. 어언 24년이 지났다. 지금도 동일한 마음으로 그런 선교자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이다. 선교는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신비하며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많고 우리의 생각과 다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자신을 내려놓고 겸손히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2000년 6월 30일 김포공항을 출발하여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도착하니 늦은 밤이었다. 육로로 국경을 통과해 카자흐스탄 침켄트까지 가야 하는데, 국경에 도착하니 군인들이 총을 들고 짐 검사와 몸수색을 한다. 아내와 딸들(8세, 7세, 4세)은 난생처음 국경을 넘고 총 든 군인들을 보고 두려움에 벌벌 떤다.

필자는 이전에 몇 번 국경을 통과해 본 적이 있지만 그때는 단기선교로 왔던 때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뭇 다르다. 한밤중 크나큰 이민자 가방 몇 개를 둘러메고 국경을 통과해야 하는데 어쩌면 다시 돌아올 길이 아니고 이 땅에서 영원히 살리라는 마음가짐으로 국경을 넘고 있다.

7월 1일 자정을 지나 침켄트에 도착하였으나 모든 것이 백지상태였다. 이틀간 수박과 물로 끼니를 때우고 있을 때 옆집 고려인이 우리를 초대했다. 고려인의 음식인 북장이(돼지 기름 덩어리를 둥둥 띄운 된장국)와 당근 샐러드 그리고 리뾰시카(주식용 빵)와 살구잼으로 대접해 주었다. 얼마나 맛나게 먹었는지, 정신없이 먹고 나니 살 것 같았다.

숙소가 마땅치 않아 결국 신학교 방 하나에 다섯 식구가 옹기종기 살았다. 6개월이 지날 즈음 조그만 아파트를 구하여 이사하게 되었다. 간단한 수리와 도배를 현지 기술자에게 맡겼는데, 도배사 2명이 하루 종일 도배지 2장을 붙여 놓았다. 3~4일이면 다 마칠 일을 두 달이 되어 수리를 마쳤다. 우리 주님께서는 일단 성질 죽이는 훈련부터 시키셨다. 이들과 평생 살려면 빨리 이들 문화에 적응해야 한다. 오늘 못하면 내일하고 내일 못하면 다음에 하면 된다는 식이다. 적응이 쉽지 않지만 다른 도리가 없다. 이곳에 오래 살고 나이 들어 보니 그것도 꽤 괜찮은 것 같다.

약 2~3년간 비워둔 신학교를 11명의 학생들과 재개교했다.
전임 선교사가 비자발적으로 철수하면서 약 2~3년간 비워둔 신학교를 재개교했다. 하나님께서 돕는 자들을 보내주셔서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었다. 9월 1일, 11명의 학생으로 신학교를 개교했다. 중앙아시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이슬람이며, 카자흐스탄의 국민 72%가 무슬림이다. 이런 종교적 상황에서 하나님께 헌신해 신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대단한 결단이 필요하다.

카자흐스탄 선교사로 입국한 지 정확히 두 달 만에 첫 사역이 시작된 것이다. 입술의 고백이 삶의 고백이 되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나는 부족하고 나는 할 수 없습니다'라고 포기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시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교를 이루어 나가신다.

방승수 선교사 / 카자흐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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