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군선교의 새 꿈을 꾼다 |2024. 09.11
[ 라떼는말이야 ]   

매주 2~3000여 명의 젊은 장정이 입영한다. 상시 1, 2만여 명의 훈련병이 상주하며 훈련하고 있다. 3000여 명의 기간 장병은 그들을 훈련시키고 지원한다. 매년 12만여 명의 훈련병이 이곳을 거쳐 간다. 매주 2만여 명의 국민이 입소식, 퇴소식에 참여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일 년이면 약 100만여 명의 국민이 방문하는 곳, 1951년 창설 이후 현재까지 약 900만 명이 그곳에서 …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되기 |2024. 09.04
[ 라떼는말이야 ]   

필자는 모태신앙이 아니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임관한 이후 예수님을 영접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역사하셨다. 졸업 시즌에 한 교수님은 훌륭한 군인이 되기 위해 늘 책을 가까이할 것을 당부하셨다. 평생을 가까이할 책 중에 인류의 최대 베스트셀러라는 성경이 포함되어 있었다.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본질적으로 변화시켰다는 성경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때 믿음의…

인생의 고비마다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2) |2024. 08.28
[ 라떼는말이야 ]   

대한민국 대통령이 자신의 부하에게 시해되는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 후 1979년 12·12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필자는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류병현 대장 보좌관으로 근무했다. 그 때 국방부에서는 긴급회의가 열렸고, 류병현 대장을 수행해 국방부공관회의에 참석했다. 회의가 끝날 무렵 1공수 부대와 국방부 헌병대와 격전이 벌어졌다. 이런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주요 군 인사들의 안위를 보장될 수 있도록…

인생의 고비마다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1) |2024. 08.21
[ 라떼는말이야 ]   

1961년 4월 20일, 육군 소위로 임관하게 하시고, 국군의 주요 직책을 거친 후 국방부 차관으로 공직 생활을 마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린다. 국가가 명령을 내리면 생명의 위험을 무릎쓰고 그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다. 1966년 8월, 필자는 강재구 소령이 지휘하던 중대의 중대장으로서 월남전에 참전하여 베트콩과 월맹 정규군과의 전투를 …

군선교 활성화를 위한 간절한 기도 |2024. 08.14
[ 라떼는말이야 ]   

1948년 제헌국회는 이윤영 목사님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됐다. 1956년 한국기독교장교회(OCU)가 설립됐고, 이후 OCU는 지속적인 성장세를 이뤘다. 영락교회를 설립하신 고 한경직 목사님은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군선교의 중요성을 인식해 한국기독교군선교연합회를 초교파적으로 설립했다. 이후 '군 복음화는 민족 복음화'라는 표어 아래 한국기독교군선교연합회를 통…

해병대의 사기진작을 위한 기도가 필요하다 |2024. 08.07
[ 라떼는말이야 ]   

해병대는 6.25 전쟁 시 김성은 대령(전 국방부 장관)의 진두지휘하에 실시된 '통영상륙작전'이 성공함으로써 낙동강 전선 방어를 이뤄냈다. 통영상륙작전은 1950년 해병대 부대가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던 통영을 탈환한 작전이다. 통영에 상륙한 해병대는 통영 시내에 있는 북한군을 소탕하고 해상으로 도주하는 자들을 격침했다. 이 작전에서 북한군 469명이 사살됐고 많은 무기를 빼앗는 대전과를 올렸…

정복 착용 후 주보 나누는 장군이 됐다 |2024. 03.27
[ 라떼는말이야 ]   

예전에 한 장군이 예배가 시작하기 전 정복을 입고 주보를 직접 주며 일일이 안내를 하였다. 장군은 묵묵히 주보를 돌리면서 계급과 상관없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두에게 경례와 포옹을 하며 악수를 해주었다. 이후 교회는 장군에게 경례를 받아보고 싶은 마음에 몰려든 장병들로 인해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꽉 차게 되었다. 군인교회에서는 장병이 장군에게 경례하는 것으로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지극…

군선교를 위해 '궁·불·피' 않도록 먼저 기도하라 |2024. 03.20
[ 라떼는말이야 ]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눅 11장 9절)" '궁·불·피'는 "궁금하지 않게, 불안하지 않게, 피곤하지 않게"를 세 글자로 줄인 말이다. '궁·불·피'는 소통의 중요성을 담아낸 필자의 신조어이다. 사람들은 달라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몰라서 오해하고, 그 오해가 갈등으로 이어지다가 …

군선교와 부대 출입증 |2024. 03.13
[ 라떼는말이야 ]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전 3:1~2)" 현역 군인들은 국방부 공무원증을 갖고 있다. 이것이 곧 부대 출입증이다. 이것만 있으면 부대의 자유로운 출입이 보장된다. 내가 현역으로 있을 때는 이것의 소중함을 잘 몰랐다. 전역하고 나니 이 출입증이 군선교에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계급으로 한 영혼과 생명을 살릴 수 있다 |2024. 03.06
[ 라떼는말이야 ]   예 육군 소장 서정열 장로(2)

군에서는 이병부터 대장까지 계급이 있다. 군무원도 직급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받은 계급으로 일할때는 항상 바쁘니까 이 바쁜 일을 마치고 여유 있을 때 또는 전역 후 군선교를 하겠다고 다짐하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때가 지나면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필자도 2001년까지는 계급이 군선교에 쓰임 받을 수 있다는 소중함을 잘 모르고, 주어진 일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주님께서 구원해 주…

군선교는 절절포(never never give up)다 |2024. 02.28
[ 라떼는말이야 ]    서정열 장로 ①

필자는 절절포를 외치며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을 찾으러 가는 일명 '절절포 장군'이다. 절절포는 처음 들어 볼 것이다. 절절포는 최신형 정신무기로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말자'라는 말을 3글자로 줄인 말이다. 또 성경 속에서 갈라디아서 6장9절 말씀의 의미를 담았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군에서는 병력순환이 빠르고…

군선교는 한국교회의 희망이다 |2024. 02.21
[ 라떼는말이야 ]   ④ 증경총회장 김순권 목사

월남 종군 1년 2개월을 마치고 귀국하여 보직을 받아 육군본부 군종감실 교육장교로 만 4년을 복무했다. 1970년 6월부터 1974년 7월까지였다. 특히 교육장교는 미8군 종교수양관에서 군종장교를 비롯한 기독 장교와 더불어 전군 군종병들의 수련회를 개최하는 미8군 연락장교 역할도 겸하였다. 그래서 매달 한두 차례 두 주간은 한남동에 위치한 미8군 종교수양관으로 출근을 하였다. 이 업무를 맡게…

더위와 싸운 월남에서의 군종활동 |2024. 02.07
[ 라떼는말이야 ]   ③ 증경총회장 김순권 목사

월남(베트남)은 더운 나라인지라 견디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현지민들은 나름대로 저마다의 피서법을 갖고 있었다. 더위에 지쳐있는 필자에게 군종병 김성수 상병이 더위 식히는 곳을 넌지시 웃으며 제안하길래 바로 응했다. 평소 자주 방문했던 '답다'로 향하였다. 그곳에는 답다교회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답다 마을 어느 초라한 집이었다.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랬다. 구렁이 몇 마리를 사람들이 목에 …

낮에는 양민, 밤에는 베트콩을 향한 군종 활동 |2024. 01.31
[ 라떼는말이야 ]   ② 증경총회장 김순권 목사

1969년 4월 18일 월남전쟁 파병 군목으로 선발되어 부산 부두를 출발하였다. 사흘간 남지나해를 항해하여 내린 곳은 월남의 중부지역 빈딘성 퀴년에 주둔한 맹호부대였다. 맹호사단 사령부에서 다시 1연대로 명령을 받았다. 전통 있는 천하 제1연대였다. 미공군 부대가 있는 평야지대 푸켓지방이다. 군종활동은 더운 나라에 와서 전쟁터에서 싸우는 우리 장병들을 위로하고 상담하는 일이 많았다. 월남전쟁…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 해라 |2024. 01.24
[ 라떼는말이야 ]    ① 증경총회장 김순권 목사

군종목사 중위로 임관해 첫 부임한 부대는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천도리에 주둔했던 육군 제12사단 52연대였다. 지금은 교통이 좋아져 서울에서 3시간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편리해졌지만 그때는 8시간 이상 소요되었고, 소양강댐이 있기 전이라 비포장도로에 검문소가 여러 곳에 있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정도로 내왕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1년에 겨우 한 번 정도만 휴가를 받아 서울에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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