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그적거리기? 얼쩡거리기!

뭉그적거리기? 얼쩡거리기!

[ 목양칼럼 ]

소종영 목사
2023년 01월 11일(수) 08:10
1982년 미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래리 월터스의 꿈은 하늘을 한 번 날아보는 것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군에 입대를 했지만 시력이 좋지 않아 비행사 자격증을 딸 수 없었다. 제대를 한 후 트럭운전을 하며 지내던 중 기가 막힌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풍선을 타고 하늘을 날아보는 것이었다. 1m가 넘는 풍선 45개에 헬륨가스를 넣고는 의자를 매달았으며, 손에는 공기총을 하나 들었다. 하늘에 올랐다가 그 총으로 풍선을 하나씩 터뜨리면서 땅으로 내려올 생각이었다. 지상과 연결한 줄을 끊자 풍선은 날아올랐다, 무려 3300미터까지.

실컷 구경은 했는데, 내려오는 일이 문제였다. 풍선을 잘못 터뜨리면 몸이 기울어질 것만 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하늘을 떠다니기를 무려 열네 시간. 어찌어찌하여 급파된 헬리콥터에 의해, 래리는 간신히 구조되었다. 이미 지상에는 방송기자들이 구름떼같이 몰려와 있었는데, 한 기자가 래리에게 물었다. "왜 이런 일을 하게 되셨습니까?" 그의 대답은, "사람이 그저 그렇게 앉아서, 뭉그적거리고 살 수만은 없지 않겠어요?" 였단다.

'뭉그적거리다'의 사전적인 의미는, '한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굼뜨게 자꾸 비비대거나 움직임'이다. 뭉그적거리고만 있다가는 새해가 오는 줄도, 겨울이 지나는 줄도, 새벽이 오는 줄도, 성령이 다녀가시는 줄도 모르고 지나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교회 성도 한 분이 새해에 당신이 먹은 마음 하나를 들려주신다. "올해는 어떻게든 예수님 주변을 얼쩡거려 보려고요." "얼쩡거려 본다고요?" "예, 공예배도 좀 더 참석해 보고, 성경과도 친근해 보고, 기도의 자리에도 좀 더 오래 앉아있어 보려고요. 그러다 보면 뵙기도 하고 친근해지기도 하겠지요." '얼쩡거린다'는 이 단어, 평소에는 참 불량해 보였는데, 순간 이 단어를 사랑하게 되었다.

가만 보니 성경은 온통, 얼쩡거린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베드로는 마지막 자존심만큼은 지키고 싶었든가 보다. 예수님 재판 받으시는 자리,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서 얼쩡거리기라도 했으니 하는 말이다. 그러나 어쩌랴, 들키고 말았으니. 서둘러 내뺄 만도 한데 두 번째 부인(否認)과 세 번째 부인 사이를 보았더니 "한 시간쯤 있다가"(눅 22:59)란다. 두 번이나 들킨 이후의 한 시간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러나 그는, 거기 그렇게 주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조금만 더'를 되뇌며 얼쩡거렸던 것이렷다. 이 얼쩡거림이 베드로를 베드로 되게 했음은 분명하다. 요한은 또 어떤가? 골고다 언덕, 주님께서 피 흘리시는 십자가의 언저리를 얼쩡거렸다. 그 언덕에 요한마저 없었더라면, 생각만으로도 아찔하지 않는가. 다른 제자들은 다 떠난 그 자리, 홀로 그렇게 얼쩡거린 요한이 참 고맙다. 이 얼쩡거림이 요한을 요한 되게 했음이다.

그러고 보니, 인생은 둘 중 하나다. 뭉그적거리며 살 것인가, 얼쩡거리며 살 것인가? 성도라면 훌훌 털고 일어나 산자락이든 천변이든, 성경이든 소설이든, 예배든 기도의 자리든 아무튼 얼쩡거려볼 일이다. 얼쩡거리기에 딱 좋은 계절, 새해가 아니던가.



소종영 목사 / 가장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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