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노래

평화의 노래

[ 가정예배 ] 2022년 12월 19일 드리는 가정예배

성희경 목사
2022년 12월 19일(월) 00:10

성희경목사

▶본문 : 누가복음 2장 12~14절

▶찬송 : 410장



인간들은 누구나 평화를 원한다. 자신의 삶과 자신이 하는 일에 평화가 넘치길 원한다. 그런데 어떤 평화를 원할까? 모든 사람들이 다 평화를 원하지만, 그 의미와 내용은 다 다르다. 왜냐하면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에게 평화를 의미하는 인사말이 있다. 그것은 '샬롬'이라고 한다. '샬롬'이라는 뜻은 '평화'이다. 무엇보다 이스라엘 신앙인들은 오랜 고난의 역사를 살아오면서 평화를 간절히 기다렸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평안, 평화를 의미하기보다는 혼란과 억압의 권위가 제거된 상태의 평화를 의미한다. 그들은 서로 '샬롬'이라고 인사말을 주고받으면서 세상이 주는 혼란과 억압의 굴레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주신 평화를 기대했다. 전쟁으로 나라를 빼앗긴 유대인들에게는 누구보다도 더 절실하게 원하는 평화이다.

예수님이 오시는 당시의 상황은 로마가 지중해를 점령하였기에 로마의 평화가 왔다고 생각했다.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세계를 제패하고 나서 로마의 평화를 선포하였고, 모두가 앞 다투어 아우구스투스의 평화를 합창하였다. 그것은 모든 작은 소리를 잠재울 만큼 크고 장엄한 소리였다. 그것은 승리의 함성, 화려한 대광식이였다. 그러나 로마의 평화는 모든 사람들의 평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로마인이 아닌 사람들은 절망과 고통의 시작이었다. 폭력과 억압, 착취의 시간이었다. 이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

그런데 절망과 고통의 땅, 작은 마을에 또 다른 평화의 노래가 울려 펴졌다. 베들레헴, 그곳은 바로 로마가 점령하여 그 이름조차 지워진 패배자들의 땅, 그중에서도 가장 작고 보잘것없는 마을이었다. 그곳은 평화의 노래가 아니라 절망의 애가가 터져 나와야 하는 곳이다. 이름조차 떡집이라는 뜻을 가진 땅, 먹혀버린 땅이다. 그 보잘 것 없는 땅에서도 빈 들판, 구유에 뉘인 아기에게 울려 펴진 평화의 노래이었다. 아주 보잘 것 없는 웅장하지도 요란하지도 않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노래이었지만 첫 성탄을 알리는 노래였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14절).

보잘 것 없어 보이고 비천해 보이는 이 평화의 노래는 로마 황제의 제한되고 거짓 평화, 폭력의 의한 평화를 폭로하고, 진정한 평화, 하나님의 평화를 노래하는 참된 평화의 노래였다. 수많은 천군 천사의 노래는 로마의 평화와 다르게 오늘 말씀처럼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서 평화였다. 특히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이었다.

지금 우리 삶의 현장에서 어떤 평화를 원하는가! 우리 자신이 생각하는 무엇이 진정한 평화일까? 오늘 다시 우리는 성탄의 평화를 노래해야 한다. 오늘 우리가 부르는 평화의 노래는 아우구스투스에게 바치는 노래인가, 아니면 구유에 누운 아기에게 드리는 노래인가? 우리의 모든 삶이 진정한 평화, 주님의 평화를 노래하는 신앙인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평화의 왕으로 오신 주님, 우리도 절망을 떨치고 일어나서,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께 평화의 노래를 드리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희경 목사/대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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