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아가는 세 가지 약병

인생을 살아가는 세 가지 약병

[ 시인의세상보기 ]

이재훈 시인
2022년 12월 08일(목) 20:54
종강이 다가왔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이제 곧 방학이다. 선생들은 짐짓 모른 체하며 표정관리를 하지만 방학은 학생들보다 선생들이 더 좋아한다. 매번 마지막 수업이 되면 종강사를 어떻게 할지 고민한다. 학생들에게 가장 멋진 말을 하려고 폼을 잡으면 대부분 빨리 끝내주세요 하는 눈빛이다. 하지만 듣든지 말든지 준비했던 종강사를 한다. 꼰대가 되어도 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이번 학기 종강사를 소개한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앞으로 삶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세 가지 약병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약병은 어렵고 지치고 힘들 때마다 꺼내어 사용하시면 됩니다. 약은 상처가 빨리 낫는데 쓰입니다. 약을 먹지 않아도 상처가 나을 수는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 시간동안 상처는 더 곪아터질 수가 있어요.

첫 번째는 '자존감'이라는 약병입니다. 세상의 감 중에 가장 영양가 있는 감입니다. 우리는 우주에서 보면 아주 작은 존재로 비춰질 수 있지만 가장 존귀하고 사랑받는 존재가 바로 여러분입니다. 인간은 평생 기계의 부속품처럼 일만 하다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사회에 나가면 여러분을 돕는 사람들보다 시기하고 폄하하고 깔아뭉개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수 있습니다. 일상을 살다보면 문득 내가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 공허에 빠질 때가 분명 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자아정체성이라고 말을 하죠. 나는 어떤 가치관과 신념과 종교를 가지고 살아야 행복한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를 타진해야 합니다.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여행도 다니고, 기도도 하고, 다양한 취미 활동도 해보면 됩니다. 내가 가장 기쁜 일과 행복한 일을 찾아서 누리세요. 그리고 나는 정말 괜찮고 멋있는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에게 말해 보세요.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멋있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약병은 '기대감'이라는 약병입니다. 여러분은 절대 혼자서 살 수 없습니다. 인간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입니다. 힘들고 지치고 진창에 빠졌을 때 여러분을 일으켜 세워주는 존재를 찾으세요. 그런 존재는 신일 수도 있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이십대는 평생 친구를 만날 수 있습니다. 마음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선후배를 만날 수 있습니다. 교수님들이나 주변 선생님들에게 자주 손을 내미시길 바랍니다. 힘들다고, 아프다고, 도와달라고 떼를 쓰세요. 그러면 여러분의 손을 잡아 주십니다. 자신이 바닥이라고 생각할 때 어딘가에 기대고 나면 기대감이 생깁니다. 기대는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용기입니다.

세 번째 약병은 '이타적 상상력'입니다. 모두들 자신과 관계없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관심이 있더라도 오래 가지 못합니다. 나에 대해 생각하고 걱정하는 마음의 백분의 일만 남겨 놓으세요. 그리고 타인의 마음은 어떨까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돈을 쓰며 기부를 하고, 몸을 움직여 봉사를 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타인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약자나 큰 사고의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어려움과 고통에 함께 마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위로하고 응원하는 마음 한켠 전하고 인터넷에 댓글 하나 남기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선한 연대의 마음이 여러분을 더욱 강하고 멋진 사람으로 만들 것입니다. 이타적인 생각은 연기처럼 조금씩 피어오릅니다. 작은 마음이 큰 마음과 행동으로 옮겨 가게 됩니다. 나의 마음과 재능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상상력이 자꾸 생길 지도 모릅니다. 이것으로 삶의 보람과 이유가 생긴다면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불의에 대한 분노도 잊지 마세요. 분노가 불의를 막을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약병은 유통기한이 없습니다. 언제든 꺼내어 복용하시고 빨리 회복하세요. 그리고 방학 때는 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다 하시고 실컷 놀아야 합니다."

여기까지가 이번 학기 종강사이다. 이런 말들이 취업난에 시달리는 지금 청년들의 현실에서 무슨 소용일까 하는 것쯤은 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런 말들만 오롯이 생각난다. 마치 수십 년 전 보았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이 외쳤던 '카르페 디엠(Carpe Diem)'처럼.



이재훈 시인/건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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