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리어 교인

워리어 교인

[ 목양칼럼 ]

황인돈 목사
2022년 12월 07일(수) 08:44
오래 목회하다 보면 별별 일이 다 있게 마련이다. 교회만 오면 전투모드로 바뀌는 워리어(warrior) 교인이 있다. 전투력이 워낙 높아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을 목사라고 어찌 감당할 수 있으리요. 목사라면 누구나 한 번 이상은 경험했을 법한 워리어 교인이 필자에게도 있었다. 오래 전의 일이다.

그 분은 70년대 여군(女軍) 출신답게 용맹했다. 당시 서슬이 퍼렇던 어느 군사령관의 전속부관실에서 근무했다고 하니 끗발도 대단했으리라. 그랬던 그가 군에서 전역한 지 이미 오래되었고 나이도 지긋했지만 그에게 교회는 적과 마주한 전선(戰線) 같았다. 늘 누군가를 붙들고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견디지 못했다.

한 번은 그가 대형 국화 화분 두 개를 사서 교회에 기증하면서 반드시 강단 앞에 놓아달라고 했다. 예배드릴 때마다 강단 앞에 놓인 화분을 보며 흡족했을 것이다. 한 달여 지나자 꽃은 시들었고 사찰집사는 화분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어떻게 되었을까? 강단 앞에 화분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는 득달같이 사찰집사에게 달려가 큰 소리를 지르며 싸웠다. 도무지 예배를 드릴 수 없을 정도였다. 싸움을 말릴수록 목소리는 더 커졌다.

그 분 때문에 목회하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그 사람을 제발 어떻게 좀 해주세요." 하나님께 하소연하듯 기도했다.

어느 저녁 나절이었다. 그에게 전화했다. "오늘 저녁에 집사님이 잘 만드시는 만둣국이 먹고 싶네요. 조금 있다 먹으러 가도 될까요?" 심방할 때 만둣국을 대접하며 흐뭇해하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고서 뜬금없이 부탁했다. 답답한 심정과 간절한 마음을 품고 초인종을 눌렀다. 갑자기 부탁한 식사 준비가 아직 덜 되었기에 거실에서 멍청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교회에 나오지 않는 그의 딸이 퇴근해서 돌아왔다. 나를 본체만체하며 지나간 딸이 자신의 방문을 여는 순간 "악!"하며 비명을 질렀다. 어디가 터진 것인지 하수도의 물이 방안으로 흘러들어 왔고 지독한 냄새가 났다.

그 상황이 기도의 응답이라 생각하고서 티 나지 않게 속으로 하나님께 감사했다. 양복을 입은 채 소매를 걷어붙이고 오수를 퍼내기 시작했다. 집사님이 달려와 사정하듯 말렸다. "목사님은 이런 것 하시면 안돼요. 제발 멈추고 댁으로 가주세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물을 다 퍼냈다. 하수도에 임시조치를 하고 수리업체에 연락까지 마친 후 그 집을 나섰다. 결국 만둣국은 먹지 못했다.

그 날 이후 그는 달라졌다. 믿기 어려울 만큼 고분고분했다. 가끔은 본성이 나타났지만 예전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목회 현장에는 늘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한 사람은 있기 마련인가 보다. '워리어 교인 총량의 법칙'이랄까. 한 사람이 잠잠하니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나 교회를 전투장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다. 주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들을 위해 오셨다. 문제 있는 교인들을 위해 목회자가 필요한 것이다. 만약 그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목회자도 필요 없지 않을까. 문제가 없기를 바라지 말고 문제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구해야겠다.



황인돈 목사 / 아름다운충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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