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식의 1968년작 '해지는 시골'

윤중식의 1968년작 '해지는 시골'

[ 이야기박물관 ]

신상현 목사
2022년 11월 21일(월) 11:17
윤중식의 '해지는 시골'. 캔버스 유화. 64X52cm. 1968년. 장로회신학대학교역사박물관 소장.
석양의 화가 윤중식(尹仲植, 1913∼2012)의 1968년작 '해지는 시골'이다. 캔버스 속 멀리 산 너머로 황금빛의 해가 숨어들고, 석양이 품어주는 들판은 석양의 주홍과 노랑으로 빛난다. 이파리 없이 앙상한 나무는 흔들림이 없어 고독하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서둘러 잰걸음을 걷는다. 그의 화면은 반복적인 가로선과 색채의 덩어리가 형태를 묘사하고, 간간히 등장하는 가느다란 나뭇가지들은 안타까운 감정을 소환한다. 황혼의 쓸쓸함 이랄까?

윤중식은 그가 경험하는 석양을 이렇게 말한다. "붉은 태양이 서쪽 산으로 기울어질 때면, 석양은 찬란한 빛과 신비의 세계로 물들고, 다양한 변화에 가슴마저 울렁거리게 된다. 너무나 순간적인 빛과 색을 바라보는 찰나, 강한 빛과 색은 사라지고 안식과 침묵의 고요한 적막(寂寞)으로 변해 버린다." 이 작품 '해지는 시골'은 바로 그가 말한 '안식과 침묵의 적막'을 머금고 있다.

반세기 이상 농촌의 석양을 그려낸 그는 긴 시간 '해지는 풍경'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고수했지만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세월과 함께 작품의 변화를 일궈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평양 출생으로 숭실중학교 시절, 당시 제2회 녹향회(綠鄕會) 공모전과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 화단에 진출했고, 홍익대학교 교수로 은퇴하기까지 미술계의 주류로 활동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평생 세속에 눈을 돌리지 않는 구도적 자세로 노년까지 붓을 들었다. 윤중식은 도쿄 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에서 야수파 스승에게 배웠다. 그 영향이 초기작품에 단순한 형태와 강렬한 색채, 굵은 윤곽선으로 남아 있다. 이후 6.25전쟁 시기를 지나면서 점차로 형태가 배경에 스며드는 추상적인 화면을 보여준다.

전쟁으로 고향과 가족을 잃은 뒤 그의 고향을 상징하는 소재인 저녁노을, 비둘기, 돛단배, 시골 풍경이 평생 윤중식 작품의 대상이 된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중학생 때부터 가을 석양에 붉게 물드는 벌판에 수시로 찾아가서 몇 시간씩 보냈다. 벼 낟가리 위에 누워 풀벌레 소리 들으며 새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불타는 노을과 함께 해가 진다. 석양 속에서는 모든 게 신비롭다. 그것이 내 감수성과 그리움의 원천이다." 어린 시절에 보고 느낀 풍경과 그때 그 시절의 정서에 대한 그리움을 자신의 작품 속에 풀어놓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석양이 물드는 벌판에서 맞닥뜨린 신비한 경험은 평생 윤중식 작품세계의 모티브가 됐다. 그의 마음에 석양 무렵 새들의 동작인 날개짓은 어둡기 전에 보금자리를 찾아 날아야 한다는 새들의 강박관념이었고, 그 작고 따스한 날개를 파닥거리며 나는 몸짓은 황혼녘의 인생이었다. 그에게 새의 날개짓은 새로운 삶의 세계를 추구해야 한다는 희망의 몸부림이었고, 창공을 향해 힘껏 나는 새는 자신이 모르는 미지의 세계를 아는 존재였다. 그래서 윤중식은 그것들을 동경하는 태도로 그림을 그렸다는 고백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는 명상으로 인도하는 힘이 느껴진다. 윤중식의 작품 앞에서 좀처럼 발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다.

신상현 목사 /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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