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에 공감하는 벗들

아픔에 공감하는 벗들

[ 가정예배 ] 2022년 11월 18일 드리는 가정예배

홍주형 목사
2022년 11월 18일(금) 00:10
홍주형 목사
▶본문 : 욥기 2장 11~13절

▶찬송 : 70장



현대인들에게 부족한 점이 있다면 '공감'이다. 사회는 예전보다 발달하고 생활은 편안해졌지만 고통받는 이웃들에 대한 공감은 현저히 낮아졌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로 신음할 때 그들의 아픔을 기도로 들으시고 구원하여 주신 분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아픔에 전적으로 공감하신 것이다.

오늘 본문은 욥이 재앙을 만나 힘들어한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먼 데서 그를 찾아왔다.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 그들이다. 각각 다른 지역에 살고 있던 친구들은 벗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 걸음에 달려온 것이다. 시간, 비용, 육체적 피곤함을 뒤로하고 욥을 위문하고 위로해 주려고 온 것이다(11절). 그들은 멀리서 욥을 보았으나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하였다. 동방의 의인이었고 재물과 덕을 갖추었던 욥의 모습을 생각했던 벗들은 머리에서 발바닥까지 피부병이 번져있고, 잿더미에 앉아서 옹기 조각으로 몸을 긁고 있는 참혹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한참 뒤에야 욥을 알아본 벗들은 큰 충격의 빠지게 된다. 욥의 벗들은 슬픔에 못 이겨 소리를 내어 울면서 겉옷을 찢고, 공중에 티끌을 날려 머리에 뿌린다(12절). 욥의 슬픔에 대한 공감의 표현이다. 욥의 벗들은 아픔에 대해 어떠한 판단을 하지 않고, 함께 울어주고, 아파해주고 있는 것이다. 적극적 공감이다. 신약에서 바울 사도는 예수님의 사랑을 함축하여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15)"라고 말했다.

벗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아니하고 욥과 함께 밤낮 칠일 동안 땅바닥에 앉아 함께한다. 욥의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통의 현장을 함께하고 있다(13절). 하루 이틀도 아닌 칠일 동안이나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한 것이다. 잠시 동안 곁을 지켜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레 동안을 함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보다 더한 우정이 어디 있을까? 이후 벗들은 욥을 꾸짖고 논쟁하는 장면이 계속해서 나오지만 여기까지 욥의 벗들이 보여준 모습은 참다운 우정이다. 한편으로 욥에게 이러한 벗들이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하다. 여기에서 주목해서 볼 수 있는 부분이 바로 "한마디도 말하는 자가 없었더라"하는 부분이다. 고통의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헛된 말의 위로 보다 '침묵의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말로 위로하다고 하면서 상처를 주는 일들이 허다하다.

우리는 종종 이웃들에게 "나 같으면 이렇게 했을 거야"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과연 내가 그 사람의 처지와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있을까? 왜냐하면 나는 나지 그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힘들어하는 이웃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 말이 오히려 마음속 깊이 생채기를 남기게 된다. 사회적 참사가 날 때마다 힘들어하는 유족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들이 가득한 시대이다. 욥의 벗들처럼 아픔의 자리에 함께하면서도 말보다는 기도와 침묵의 연대가 필요하다. 주님의 사랑의 시작은 공감에서 시작되었음을 기억하자.



오늘의기도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을 당한 이웃에게 말이 앞서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눈과 마음으로 다가가 함께하며 공감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홍주형 목사/장신교회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