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 열심 뒷심

초심 열심 뒷심

[ 목양칼럼 ]

박귀환 목사
2022년 11월 02일(수) 08:18
 오래 전 서울의 한 교회에서 교구목사로서 심방을 하는데 아주 어려운 가정을 심방했다. 논현동의 지하실에 사는 할머니를 만났다. 힘든 가정환경에서 마음을 열고 맞이해 주셔서 참 감사했다. 그런데 심방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갑자기 내 손에 뭔가를 쥐여 주셨다. 거절하고 뿌리치려고 해도 눈물을 글썽이면서 끝까지 내 손에 쥐여 주셨다. 그러면서 내게 이런 말을 해 주셨다.

"목사님 저는 목사님이 저의 집에 심방을 와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마치 예수님이 저희 집에 심방을 와 주신 것 같아서 심방을 준비하면서 너무 기뻤습니다. 목사님 이것은 제가 며칠 동안 폐지를 주워서 모은 거예요. 꼭 한번 식사를 사드리고 싶은데 그것도 힘들어서 목사님께 식사 대접하는 마음으로 모은 거니 거절하시면 안 됩니다. 꼭 받아주세요."

하려던 말이 목구멍에 탁 걸려왔다. 얼굴 표정을 보니 거절하면 상처를 받으실 것이 분명해 보였다. 무엇보다 할머니의 얼굴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보았다.

그때 주님이 내게 이렇게 말씀 하시는 것 같았다. "귀환아 나는 네가 연약하고 힘든 이 가정에 심방을 와 주어서 고맙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받았다. 나의 눈에도 눈물이 핑 돌았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그 당시 고향에 계시던 어머님이 생각났다.

며칠 동안을 거리를 다니면서 폐지를 주우시는 모습이 필자의 눈에는 보였다. 무엇보다 할머니 마음 중심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목회자의 심방을 예수님의 심방처럼 준비하셨다는 것이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그 울컥함이 목회자인 나를 철이 들도록 만들었다. 세상살이가 쉽지 않고 가난하고 먹고 살기 힘들어서 심방조차 제대로 받기 힘든 분이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 순간이었다. 그날 받은 봉투 속에 든 1만 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었다.

그 돈을 바라보는데 다시 눈물이 났다. 그래서 바로 미국을 다녀오신 분이 내게 선물한 영양제를 다락방장님을 통해 출처는 밝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며 할머니께 보내 드렸다. 할머니께서 주신 그 봉투를 때로는 품 안에 품고 다니고 때로는 설교를 준비하는 책상의 서랍장에 보관하였다. 목회자로 철이 들게 한 할머니의 1만 원이 내게는 1000만 원보다 값진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그 1만 원을 통해 주님의 마음을 느끼고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음이 감사하였다. 이 자리를 빌어서 필자를 목회자로 철이 들게 하신 성도님들께 정말 감사를 드리고 싶다.

극히 일부겠지만 어떤 목사들은 부자들만 만나고 꾸준히 관리한다는 말을 전해 들으며 마음이 참 아팠다. 실제로 그런 분들을 몇 분 보기도 했었는데 참 서글픈 일이다. 그 자체로 '망한 목사'란 생각이 든다. 그 할머니와의 경험은 이후 나의 목회를 바꾸었다. 할머니의 1만 원은 그렇게 지금까지도 마음에 깊이 새겨두고 있다. 목양(牧羊)의 길에서 이러한 순수한 초심(初心, the first)을 잃지 않고 열심(熱心, the best)을 다하여 뒷심(完走, the last)까지 발휘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박귀환 목사 / 생명샘동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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