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목회 첫 여정

나의 목회 첫 여정

[ 목양칼럼 ]

홍정우 목사
2022년 11월 02일(수) 08:20
 1986년 신학대학을 마치고 목회지를 위해 기도 하던 중에 고향교회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교회에서 목회 하시던 선배 전도사님께서 큰 교회로 옮기시게 되었다. 그 교회 집사님들이 와서 설교 만 해 달라는 부탁을 하셨고 성경만 가방에 넣고 걸어서 교회를 가는 것이 목회의 시작이 되었다.

전임 전도사님께서 이사를 가시면서 처음 교회에 부임을 해 보니 먹을 것이 없어서 죽을 몇 개월 드셨다면서 후에 목회자가 오면 굶지 않아야 한다며 쌀2포, 김장김치, 고춧가루, 소금, 된장을 남겨 두고 가셨다. 장년부가 30명 정도 모이는 교회였다. 전도 구역은 3개 마을 이었고 톱밥 난로로 난방을 하면서 예배를 드렸다.

총각 전도사가 왔다는 소문을 듣고 아동부 중고등부 학생들이 30명 정도가 모여들기 시작을 했고 은혜 가운데 교회가 부흥이 되었다. 고향교회 목사님은 교회를 떠나지 말고 현 교회에서 목회를 하라고 하셨지만 임시 설교 전도사로 부임을 했기 때문에 행정 절차상 떠나야만 했다. 고향교회를 떠나지 말고 교육 목사로 같이 목회를 하자고 하셨지만 나도 당회장이 되고 싶어 4개월 정도 교회를 섬기다가 진도에 첫 담임전도사로 부임을 하게 되었다.

교인은 4명이었고, 교회는 옛날 12평 되는 집을 개조하여 반을 예배당으로 반은 사택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전화도, 샘도 없었고 화장실과 부엌이 재래식이어서 왕겨를 태워 난방을 하며 목회를 시작했다.

부임하던 당시에 여자 하루 인건비가 5천 원이었는데 한 달 사례비가 3만 원이었다. 교회 건축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던 중 일명 '기둥 집사님'이라는 분이 본인 집 옆에 있는 밭을 기증할 터이니 그곳에 교회를 건축하자고 했지만 그 때는 믿음의 열정이 뜨거워 기도해 보니 현재 교회 터에 건축하면 좋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건축업자와 계약을 하고 건축을 시작했는데 업자가 건축비를 가지고 놀음을 해서 잃어 버려 교회 건축은 중단이 되었고 동네에서는 교회가 건축하다가 부도가 났다고 소문이 나 너무 힘들었다.

한 번도 망치를 들어 본 적이 없던 내가 망치를 들고 건축을 직접 하게 되었다. 집을 건축하면 반 목수가 된다고 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것 같다. 지금도 목회 하면서 그때의 건축이 지금까지 35년 목회에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구경꾼이던 교인들이 기도하기 시작했고 건축에 협력하여 예산 보다 3분의 1이 더 들어갔지만 교회를 완공할 수 있었다.

3년 동안 목회 하면서 잊지 못하는 두 여인이 있다. 첫 번째 여인은 25세 나이로 부임했을 때 만난 권사님이다. 홀로되신 그분은 65세에 아들을 따라 도시로 나갔다가 무료해서 고향교회에 한번 다니러 오셨는데, 와서 보니 교회 마당에 풀은 가득하고 교인은 없는 어려운 상황을 보고 다시 돌아갈 수가 없어 사택을 지키며 교회 관리를 하셨다. 그러다 전도사가 부임하자 동네 빈 집으로 이사를 가셨고, 목회하는 동안 총각 전도사의 식사와 빨래로 섬겨주셔서 지금도 잊지 못한다. 또 한 여인은 현재 나와 같이 살고 있는 아내이다. 장모님이 몸이 아프셔서 고향에 내려와 간호하다가 총각 전도사가 마음에 들었는지 결혼하게 되었고, 32년간의 내조로 지금도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은 이곳에서 목회 훈련을 잘 받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여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홍정우 목사 / 새진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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