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박수근이 연필로 그린 '교회당이 보이는 풍경'

1957년, 박수근이 연필로 그린 '교회당이 보이는 풍경'

[ 이야기박물관 ]

신상현 목사
2022년 10월 17일(월) 09:42
박수근 작 '교회당이 보이는 풍경', 1957년, 19.5*25cm.
"어린 시절 '밀레의 만종'을 보고 혼자서 '밀레와 같은 훌륭한 화가가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그림 그리는 데 게을리하지 않았어요."

한국의 대표화가로 꼽히는 박수근(朴壽根, 1914~1965)의 작품은 조용하게 사실(寫實)적인 일상을 포착한다. 그런데 그 사실(寫實)은 매우 평면화돼 대상의 형태가 약하고 희미한 사실(寫實)이다. 박수근 특유의 배경과 형태를 비슷한 색채로 표현하는 기법은 대상의 형태가 색채와 마티에르(질감)속에 스며들게 했다. 그는 한국 전통의 화강암 석조물의 느낌에서 그만의 질감(마티에르)을 착안했다. 그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는 박수근만의 독특함이다.

가난 때문에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고, 서울 창신동 단칸방을 아틀리에 겸 살림집 삼아 자신의 작품세계를 일군 박수근은 항상 가난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 노상의 사람들, 마을 풍경들이 그의 화폭에 담겨있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한복차림의 노인들, 아이들, 치마저고리의 소박한 아낙네들이 작품의 주인공이었다. 그들은 때로 목판을 벌이고 장사를 하며, 절구를 찧고, 머리에 짐을 이고, 아기를 업거나 안고 있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고, 다채롭지 않다. 나는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물론 어린아이들의 이미지를 가장 즐겨 그린다. 나는 진실하게 살려고 애썼다. 또 나는 나의 고난의 길에서 인내력을 길렀다"는 그의 진심은 그의 작품들을 통해 고스란히 비쳐진다. 가난 속에 고달파 보이는 그들의 삶은 박수근의 화법에 의해서 그들의 삶을 사랑과 인내로 수용하며 살아내는 사람들로 승화됐다.

박수근의 스케치 '교회당이 보이는 풍경'은 한 남자가 노상의 계단에 앉아있는 그림이다. 그림 전면부 중앙에 위치한 남자의 형태는 대단히 단순화되고 추상화돼 있지만 그 본래의 형태감은 사실적인 묘사보다도 더 사실적이다. 그는 과감하게 인물과 형상을 데포르마시옹(deformation: 주로 회화에서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일부 변형, 축소, 왜곡을 가해서 표현하는 기법)해 조형적으로 완전함을 이뤘다. 이것은 형태를 묘사하는 선의 힘에서 나오는데, 박수근이 얼마나 오랜 시간 대상을 면밀하게 관찰했는지를 증명 한다. 기도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사연이 있는 것 같기도 한 그림 속의 이 남자는 절대자 앞에 단독자로서 고독해 보인다. 고개를 숙여 얼굴을 깊이 파뭍어 감추고 몸을 잔뜩 움추린 이 남자는 교회를 등지고 앉아 두 손을 지팡이에 의지했다. 사실 박수근은 이 그림을 그린 1957년 제6회 국전에 100호 대작의 '세여인'을 출품했으나 낙선하고 만다. 그 일로 크게 실망하여 슬픔에 빠져 폭음하는 일이 잦았고, 결국 병을 얻게 되었다. 어쩌면 이 그림 속의 남자는 박수근 자신이었을까? 신자 이기도 했고 천성이 착했던 그는 국전이 파벌과 비리로 얼룩지고 있을 때도 생계를 위해 그림을 팔아야만 했었다. 타자용 종이에 연필로 그린 이 그림은 가난했던 그의 형편을 보여준다. 평생을 자신의 신앙과 사랑을 지킨 사람, 가난한 삶의 자리에서 만나는 이웃에 대한 애정을 작품으로 승화한 박수근의 삶에 박수를 보낸다.

신상현 목사 /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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