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출간된 언더우드의 '찬양가'

1894년 출간된 언더우드의 '찬양가'

[ 이야기박물관 ]

신상현 목사
2022년 08월 29일(월) 16:33
1894년판 언더우드의 '찬양가'의 표지.
언더우드 찬양가의 제1장 찬송.
우리나라에 최초로 서양음악의 4성부 5선 악보로 출간된 책이 언더우드의 '찬양가'다. 찬양가는 1908년 장로교와 감리교의 합동 찬송가가 출판될 때까지 주로 경기·호남지방에서 사용됐다. 서양 악보를 사용하기 전, 우리나라에는 세종대왕이 창안한 '정간보(井間譜)'라는 악보가 있었다. 정간보는 바둑판처럼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칸(間)을 나누고 칸의 수로는 음의 장단을, 칸 안의 음이름으로는 음의 고저를 나타내는 기보법이었다. 하지만 주로 궁중의례 음악만 정간보로 기록됐고 대다수 민간음악은 구전으로 전승됐다.

이런 형편 속에서 초기 교인들은 찬송을 부를 때 악보없이 중국어 음가를 그대로 불렀다. '예수 사랑하심을' 이라는 가사를 '주예수애아(主耶蘇愛我)'라고 부르는 식이었다. 정확한 뜻을 알지 못한 채로 찬양하는 경우도 생겼다. 당시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에서는 이 찬송을 'Yes, Jesus loves me'로 배웠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선교사 언더우드(H.G. Undertwood)는 한국교회의 부흥과 함께 예배를 위한 한국어 찬송가의 출간을 서둘렀다. 합동찬송가 발간이 장-감 연합사업으로 합의되면서, 장로교의 언더우드 목사와 감리교의 죤스(G.H. Jones) 목사가 이를 준비하게 된다. 그러나 죤스 목사가 미국에 간 후 마음이 급했던 언더우드 목사는 혼자서 '찬양가'를 발행하고 말았다. '찬양가'는 1894년 예수성교회에서 간행, 일본 요코하마에서 인쇄돼 서울 삼문출판사를 통해 보급되지만, 감리교회뿐 아니라 서북지역 북장로교회의 외면을 받게된다. 이유는 언더우드 목사가 다른 사람이 번역한 찬송가를 허락없이 사용했다는 것과 당시 논쟁 중이던 '신명(神名)' 문제였다. 결국 장로교에서도 하나님 호칭을 '여호와'로 사용한 언더우드의 '찬양가'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찬양가'는 한국 최초의 서양악보 찬송가로 편집이 뛰어난 양장본이며, 특히 한국인이 창작한 가사를 사용한 찬송이 9곡 실려있다. 그 제목은 4장 '이 세상을 내신 이는', 29장 '우리 주의 피를 보면', 38장 '우리 예수 큰 공로가', 40장 '세상 사람 죄악 많아', 61장 '예수의 높은 이름', 93장 '어렵고 어려우나', 113장 '이 세상의 중생들은', 114장 '만국 방언 다 잘하고', 115장 '나는 믿네 나는 믿네 여호와'다. 복음이 들어온 지 10년 남짓, 한국인 작사의 찬송이 고작 한두 곡이던 때였다. 언더우드 목사는 '토착 찬송을 많이 가질수록 현지인의 마음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찬송은 구원받은 자의 믿음의 고백으로서 예배를 드리면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높이게 되기 때문이었다. '찬양가' 1895년 판에는 한국 개신교 찬송가로는 처음으로, 십계명, 사도신경, 주기도문이 수록돼 있다. 이는 한국 교회 예배의 내용과 전통을 이야기해 주는 중요한 기록이다.

신상현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역사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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