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벌레요, 주님이 사랑하는 애벌레

나는 벌레요, 주님이 사랑하는 애벌레

[ Y칼럼 ] 이정인 청년 ⑤

이정인 청년
2022년 07월 27일(수) 16:22
글 쓰는 일을 하기 전에는 직장생활을 했었다. 근로계약서도 없이, 그저 열정에 불타올라서 내 젊음을 갈아 넣고 싶었다. 10년간 열심히 버텨서 돈을 잘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주 해맑게도 말이다. 덕분에 인간에 대해 진하게 배웠다. 인간이 왜 선악과를 왜 따먹었는지 절실하게 알 수 있었다. 별의별 사람이 다 있고, 왜 세상에 여러 가지 색이 있고 다양한 맛이 존재하는지, 직장생활을 하고 깨달았다. 와우, '돌아버린다'라는 표현이 딱이었다.

당시 제정신으로 살 수 없던 나는 매일 목사님께 연락했다. 목사님은 친절하게 섬겨주셨다. 난 당시 한 팀의 막내로 있었다. 한 날은 팀장님 같은 분께 인격을 바닥치는 말들을 들었다. 이해가 안 됐다. 그러나 들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 생각해도 손이 떨리지만, 그날은 분노에 갇혀 눈물이 아니라 실소섞인 웃음밖에 안 났다. 가슴이 답답하고 막막했다. 그날 목사님은 나에게 명언을 해주셨다. "목사님, 왜 주님은 저런 사람들을 만드셨을까요? 왜, 나는 여기있을까요?" 등 오만가지 말을 쏟아내는 나에게 "자매님, 제가 직장에서 써 붙이고 늘 보는 말씀이 있어요. 알려드릴까요?"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다윗이 쫓기다 못해 나는 벌레라고 고백했다' 목숨이 오가는 일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주님이 없으면 하루도 못 버틸 시간이었다. 목사님이 농담삼아 말해주셨다. '나는 벌레요'를 되뇌어보라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감사하게도 최근엔 그럴 일이 사라졌고, 그분들도 나도 서로의 축복속에 인사를 했지만, 여지껏도 내가 낮아져야 할 일이 생기면 되뇐다. '나는 벌레요. 나는 벌레요. 주님이 너무나 사랑하는 벌레'

중요한 포인트는, 시편 22편 속에서 다윗은 쫓기고 억울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솔직하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당신은 왜 날 버리십니까. 그러나 주님을 찬양합니다' 모든 것들을 하나님 앞에서 해 나아간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렵지만 그렇게 되고 싶다. 앞이 막막하고, 내 삶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때마다 두려움을 던져버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사실과 내가 벌레이든 조롱의 대상이나 비방거리가 되더라도 그런 나마저도 사랑하는 그 사랑이 감격스럽다.

오, 너무 좋다.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나아가는 것. 저들이 벌레에요! 보다, 내가 벌레다 발악 한 번 하고 시원하게 훌훌 털어본다. 더불어 하나님의 딸이라는 신분에 기대어 여유도 가져본다. 나는 어떤 나비가 되려고 이런 애벌레 시간을 보내나 기대한다. 벌레도 여러 종류겠지만, 난 애벌레로 대입해본다. 주님, 제가 어떤 나비가 되렵니까? 라고.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은 싫다, 그냥 존귀한 애벌레로 이렇게 주님의 일하심을 기대하고 찬양하며 나아가본다.



이정인 청년 / 은혜로사는교회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