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영원한 왕

보이지 않는 영원한 왕

[ Y칼럼 ] 이정인 청년 ④

이정인 청년
2022년 07월 20일(수) 16:11
최근 중·고등 학교 시절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세상이 나보고 죽으라는 거 같아."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곧장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내 코가 석자였다. 나도 사회 초년생 시절 공황과 우울장애를 겪은 적이 있던 터라 쉽게 접근하고 싶지 않았다. 친구는 나에게 또 다른 카톡을 보냈다. "너 자살시도 해본 적 있어?"라고. 아쉽게도 그 말은 나를 무섭게 하지 못했다. 반가웠다. 나는 그 말이 "나 좀 도와줄래?"로 들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신다. 왜 일까. 주님이 보이시기만 한다면 그만한 행운이 없을 텐데. 이 말을 밖에서 하자마자 필자의 남자친구는 말했다. 거긴 에덴동산이야. 세상이 나를 압박해오고 일상 속에서, 그리고 관계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우리는 쉽게 생각한다. 이놈의 세상 언제 끝나냐고, 혹은 살아서 뭐 하냐는 메시지들까지도 우린 별 죄의식 없이 이야기하곤 한다. 그런데 그 말이 하나님의 마음을 후벼파고 있진 않았는지 생각한다.

기도회 중에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여러분은 하나님보다 두려움을 더 크게 생각하고 있진 않으십니까?" 도와달라는 사람을, 고작 두려움 따위로 회피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하루가 지나 연락한 친구는 또 "죽고싶다"고 말했고, 세상에 대한 분노를 나에게 퍼부었다. 내 마음에 한 마디가 맴돌았다. '주님이 널 사랑하셔' 이 말을 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쉽게 떼어지지 않는 나의 입과 벌렁거리는 심장에 주님께 기도했다. "뭐, 어떻게 하라고요!"

익숙했다. 주님이 날 사랑하신다는 것. 나는 그 말로 이겨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 그 사랑을 기억하니 또 나는 감복했지 뭔가 결국, 친구에게 말했다. "너는 소중하다"고, "너는 사랑스럽고 존귀하다"고. "처음 들어본다"고 했다. 바울은 말했다.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벼랑 끝에 매달린 그 아이를 주님께로 인도하려 한다. 아니, 난 할 수 없지만 주님이 하실 거다.

보이지 않는다는 건, 영원하다는 것이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그 하나님을 찬양하며 아득한 길을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하루를 은혜로 살면서 주님이 주신 사랑을 나누며, 나와 우리가 걸어가야 할 주님의 발자국이 남겨진 이 길은 그런 길이 아닐까. 우리의 삶이 눈물로 얼룩진 것 같고, 나아지지 않을 어둠 속에 있는 것 같이 느껴지더라도 그것은 지극히 경한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지극히 크고 영원한 것을 기억하면서 그것이 우리에게 이루어질 날을 기대하며, 그렇게 말이다.



이정인 청년 / 은혜로사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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