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의 해방일지

아저씨의 해방일지

[ 시인의세상보기 ]

이재훈 시인
2022년 07월 06일(수) 10:00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 편이었다. 드라마는 뻔했다. 막장드라마는 욕하면서 계속 보게 된다는 말이 있다. 나또한 그런 편이다. 욕하면서도 매번 드라마에 빠진다. 드라마에 금세 빠질 것을 알기 때문에 보지 않는다. 뻔한 이야기에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다.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면 멈추지 못한다는 것 또한 알기 때문에 시작하지 않는다. 진부하고 염치없고 최루성 눈물을 강요하는 드라마에게 지고 싶지 않아서다. 하지만 최근 또 드라마에 지고 말았다.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건 코로나 때문이었다. 올해 봄날 남들 다 걸린다는 코로나에 걸려 방안에서 강제유폐의 시간을 보내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철 지난 드라마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그만 된통 병에 걸리고 말았다. OTT서비스는 드라마를 보기에 너무 좋은 플랫폼이다. 1회부터 시작하면 마지막회까지 한 번에 볼 수 있으니까. 다음회를 보기 위해 일주일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까. 킹덤, 오징어게임, DP, 이 구역의 미친 X, 지금 우리 학교는, 지옥, 우리들의 블루스 등등.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는 아저씨가 된 것이다.

가장 인상 깊게 본 드라마는 '나의 아저씨'이다. '나의 아저씨'는 내 인생드라마가 되었다. 몇 년 전 드라마이지만 매년 또다시 보고 싶을 정도로 좋은 드라마였다. 드라마는 상처에 관한 이야기였다. 상처의 연대가 영혼을 얼마나 크게 위로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영혼을 나눌 수 있는 관계는 상처를 들여다보며 울어주는 것이다. 울어주며 서로를 응원해주는 것이다.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에 대해 오래 생각해보게 되었다.

최근에 인상 깊게 본 드라마는 '나의 해방일지'였다. 우리의 내면에 자리잡은 해방과 자유의 의미를 생각하는 드라마였다. 해방이라는 키워드는 흔한 것이지만 제대로 다룬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 억압 속에서 살면서 해방을 꿈꾸지만. 그저 꿈만 꿀 뿐이다. 사람을 추앙하고 환대하는 것이 얼마나 큰 정신적 자산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소통은 사람을 변하게 한다는 사실도.

좀 엉뚱한 얘기지만 '나의 아저씨'와 '나의 해방일지'가 마치 종교적 구원에 관한 드라마라는 생각을 했다. 주인공들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연대를 맺고 사랑의 의미를 인식하고 구원에 이른다. 그 인식의 과정 사이에는 고통이라는 인간사가 존재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고통으로 평생 괴로워하기 마련이다.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이라면 숨을 쉴 수 있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구원의 메타포는 빈번하게 등장한다. 주인공들의 관계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이면서 인간과 신의 관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두 드라마의 공간들은 모두 현실을 가장한 환타지에 가깝다.

시인들은 자주 슬픔과 고통을 노래한다. 허수경은 "남녘땅 고추밭/햇빛에 몸을 말릴 적//떠난 사람 자리가 썩는다/붉은 고추가 익는다//막 옮기기 끝낸 고추밭에/편편이 몸을 누인 슬픔이/아랫도리 서로 묶으며/고추모 사이로 쓰러진다.//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라고 노래했다. 슬픔은 거름이 된다. 슬픔은 서로 아랫도리를 묶으며 쓰러지는 관계 속에서 거름이 된다. 정현종은 "사람의 일들을 노래한다/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일은/사람 사랑하는 일이어니/쾌락은 육체를 묶고/고통은 영혼을 묶는도다"('고통의 축제')라고 노래한다. 사랑하는 일은 쓸쓸한 일이지만 고통은 영혼을 묶는 일이다. 인간은 저 멀리 홀로 떨어질 때가 가장 고통스럽다. 고통스러운 존재들끼리 서로 묶여 있다면 고통은 축제가 될 수 있다. 슬픔이 거름이 되고 고통이 축제가 된다는 역설은 오래 삭아서 남은 영혼의 고갱이들이다.

나의 해방일지에서 주인공이 지하철을 타고 가며 해방교회 간판에 새겨진 글귀를 매일 본다. "오늘 당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그 밑에 작은 성경말씀이 있다.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막 6:50). 두려워하지 말고 행복하라.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주인공들이 화두처럼 마지막에 내뱉던 행복하자라는 말이 귓전에 오래 남는다. 그리고 나의 해방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이재훈 시인/건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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