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작, 이연호 목사의 '왕의 손님들'

1961년작, 이연호 목사의 '왕의 손님들'

[ 이야기박물관 ]

신상현 목사
2022년 03월 28일(월) 16:18
이연호, 왕의 손님들, pen drawing, 24.5*21.5cm, 1961.
'왕의 손님들'은 1983년 개인 소장 유물 400여 점을 기증해 장로회신학대학교역사박물관을 설립한 이연호 목사(1919~1999년)의 펜화(pen drawing) 작품이다. 독립운동가요, 빈민목사, 예술가로 알려진 그는 일제강점기 항일결사를 조직해 4년간의 옥고를 치렀고, 빈민과 함께 한 목회를 비롯해 시, 소설, 그림 등의 작품으로 진솔한 삶의 고백을 남겼다.

이연호는 신학생 시절, 당시 빈민촌이던 호반재의 사람들과 함께했다. 대홍수로 엄청난 수의 빈민들이 모여 살게 된 이촌동으로의 이사는 더 낮은 곳으로의 행보였다. 그는 거기서 1945년 성 나사로교회(현 이촌동교회)를 개척했고, 부인 정용득 사모는 1948년 빈민의원을 개원해 가난한 사람들의 영과 육을 돌봤다.

'왕의 손님들' 아랫 쪽에는 'The King's Guests (Matthew 22:1~10, Luke 14:16~23) Ye. Yun-Ho.'라는 제목과 작가의 서명이 적혀있다. 이 본문은 왕의 잔치에 먼저 초청됐던 사람들의 거절로 인해 가난한 자, 몸 불편한 자, 맹인들과 저는 자, 길과 산울타리 가의 사람들이 잔치를 맛보았다는 예수님의 비유이다.

화면 가득 비루한 행색의 걸인과 장애인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그 시절 함께했던 사람들의 초상이다. 어쩌면 넝마주이들과 어울려 다녔던 자신도 그림 속에 등장하는 듯하다. 이연호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과 함께했던 비루한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잔치에 초청된 '왕의 손님들'이었다고 강변했다. 펜과 잉크만을 사용한 펜화의 날카로운 선들은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였던 등장인물들의 공허함과 황량함을 느끼게 한다. 이연호는 훗날 자신의 삶을 '구더기는 나의 어머니요, 나의 누이요'라며 한탄했던 욥의 고난에 비유했다. 그러나 그는 '적선하라고 앉아서 내미는 저 손은 가끔씩 김치를 만들어서 보내주던 그 손이 아닌가! 그뿐인가 쌀이 떨어져 시골로 동냥 갔다 돌아왔을 때에도 조기 열 마리를 선물로 받았고… 저들은 나의 은인이다. 그리고 나는 저들의 유일한 친구이며 의지가 아닌가?'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평생 하나님 앞에 살며 어둠 속에 살던 자들을 위해 헌신했던 이연호 목사의 마음은 이 작품 '왕의 손님들'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는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을 회복시키는데 모든 것을 바치신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었다.

신상현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역사박물관 학예사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