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늘 웃고 있는 당신...이젠 아프지 않지?"

"사진 속 늘 웃고 있는 당신...이젠 아프지 않지?"

[ 심중일기 ] 금호교회 이화영 목사

이화영 목사
2022년 02월 10일(목) 09:30
금호교회 담임 이화영 목사는 급성골수성백혈병으로 투병하다가 지난해 5월 27일 별세한 아내를 그리워 하며 글을 썼다. 몇 년 전 아내와 함께 한 사진.
#손을 놓았다

나는 아내에게 나랑 같이 오래 살자고 했다. 아내도 처음에는 나와 함께 오래도록 살겠다고 장담했다. 그러던 아내가 태도를 바꾸었다. 하나님 나라에서 예수님과 같이 살겠다고 고집했다. 예수님께 부탁했다. 나랑 같이 더 살게 해 주세요. 처음에는 들어주실 것 같았다. 얼마 후 예수님의 말씀도 달라지셨다. 하늘 아버지 집에서 사는 것이, 너랑 너의 집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아름답고 행복할 것이라고 하셨다. 다시 물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아프게 하셨나요? 왜 그렇게 힘들게 하셨나요? 무슨 큰 죄를 지었나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죄 때문이 아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네 아내가 너의 손을 놓았겠느냐? 그리고 너도 마찬가지다. 네 아내가 그렇게 아프지 않았다면 너도 네 아내의 손을 놓았겠느냐? 그렇게 아내는 갔고, 나는 아내의 손을 놓았다.


#오늘도 웃는다

요즘 아내는 늘 웃는다. 찡그리는 법이 없다. 교회 간다고 해도 웃고, 교회 갔다 왔다고 해도 웃는다. 심지어 내가 아프다고 해도 웃는다. 늘 나만 바라보고 웃는다. 아내는 평소에 잘 웃었다. 명랑하고 씩씩하고 적극적이었다. 그러던 아내가 많이 울었다. 기저귀 차고 누워만 지내는 저 사람처럼 저렇게 고생하다 죽는 것이 아니냐며 울었고, 전갈이 쏘는 것 같이 아프다고 울었고, 하나님 왜 내게 이런 고통을 주시느냐, 언제 이 고통이 끝나느냐며 울었다. 여보, 이젠 울지 않는 거지? 정말 저 사진처럼 늘 웃고 있는 거지? 이젠 아프지도 않지? 그때는 너무 아파했지? 몸이 불같이 끓기도 하고 오랜 항암으로 항문이 부어올라 고춧가루를 뿌린 것 같다고도 하고, 입안이 헐고, 다 빠졌다가 조금 자란 머리카락이 또 빠지고, 양팔은 주삿바늘 자국으로 시커멓게 멍이 들고, 다리는 코끼리 다리처럼 부어서 잘 걷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잘 걷는 거지? 그렇게 걱정하던 백혈구 수치도 정상, 호중구도 수치도 정상, 혈소판도 정상이고 수혈도 더 하지 않겠지?


#다른 세상을 산다

아내가 가고 나무가 옷을 갈아입었다. 벌써 몇 번이나 갈아입었다. 벌거벗은 몸에 푸릇푸릇 이파리의 옷을 입고 그 옷을 다 벗고 푸른 나뭇잎의 옷을 입고, 단풍의 옷을 벗고, 누런 낙엽의 옷을 입고, 가랑잎이 되어 그 옷마저 훌떡 벗고 또 나목이 되었다. 이제 봄이 되면 나무가 또 새 옷을 입겠지? 여보, 우리 딸이 앉았던 의자. 아들이 밥 먹던 의자. 또 당신이 앉았던 의자 있잖아. 그 의자는 아직 치우지 않았어. 손대지 않았어. 건들지 않았어. 그대로 두니 아주 가끔 딸이 와서 앉기도 하고. 아들도 와서 앉기도 하는데 당신 의자만 늘 비어있네. 출가한 딸도, 살림 낸 아들도, 집에 올 차편이 있는데 당신만 돌아올 차편이 없나 보지? 그래도 의자는 그냥 두기로 했어. 여보, 사람들이 나만 보면 어떻게 사느냐고 물어? 어떻게 대답하는지 궁금하지 않아? 그때마다 나는 지금 다른 세상을 산다고 대답하고 있어. 인생은 계속 살아보지 않은 또 다른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닌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도 엄마 품과는 분명 다른 세상이고, 남자가 군대 가는 것도 다른 세상을 사는 것이고, 결혼하는 것도 화성에서 온 사람과 금성에서 온 사람이 사는 딴 세상이고, 입원하고 수술하는 것도 다른 세상을 사는 것이고, 특별히 이혼하고 사별하는 것도 모두 다른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닌가? 이 세상에서의 삶은 사실 당신이 먼저 가 있는 세상을 바라보며 계속 연습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지금 여긴 한겨울이야. 유난히 추운 것을 싫어하고 따뜻한 곳을 좋아했던 당신. 그곳은 춥지 않지? 춥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고 건강하지? 대답은 하지 않고 여전히 웃고 있는 당신을 바라보며 나도 엷은 미소를 지어.


이화영 목사 / 금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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