푯대를 향하여

푯대를 향하여

[ 가정예배 ] 2022년 2월 10일 드리는 가정예배

심상효 목사
2022년 02월 10일(목) 00:10
심상효 목사
▶본문 : 빌립보서 3장 1~14절

▶찬송 : 552장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를 자랑하라'고 말씀한다(1~3절). 당시 빌립보 교인들에게 퍼져있는 잘못된 사상이 세 가지 있었다. 첫째, '개들'이다. 이들은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는 유대주의 율법주의자들이었다. 둘째, 형식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십자가에서 율법이 폐기되었다며 방종에 흘렀던 사람들이다. 장로교는 '성도의 견인'이란 칼빈의 교리로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임을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장로교는 구원파 이단처럼 성화를 무시하지 않는다. 셋째, '몸을 상해하는 자들'이다. 자해를 하며 자신을 치는 것은 기독교의 경건 방식이 아니다. 참 기독교인은 마음의 할례를 행한 신자이다(렘4:4, 롬2:28~29).

사도 바울은 자신이 율법적으로 못 살아서 하는 말이 아님을 말씀한다. 자신이 철저한 바리새인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자신의 인생 이력서를 약술한다(빌3:5~6). 문제는 예수를 몰랐다는 것이다. 예수 없이 나열된 인생 자랑이란 기초 없이 쌓아가는 모래성에 불과하다. 이후 바울은 세상 이력과 자랑거리를 다 해로 여겼고 심지어 배설물로 여겼다. 이것이 자기를 부인하는 삶인 것이다. 세상 자랑이 없는 사람 그리고 십자가를 자랑하고 연약함을 자랑하는 사람 그래서 연약함을 때문에 더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고 간구하는 사람이 참 그리스도인이다(갈6:14, 고전11:30).

그러면 왜 세상을 버리고, 왜 자신을 부인할까? 먼저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고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싶기 때문이다(8~9절).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창조와 부활과 천국의 지식이 다 들어 있다. 그리고 예수 안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몰라서 불안해한다. 밤길이 두려운 것도, 미래가 불안한 것도 우리가 알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 불신자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이후의 삶을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을 모를 때 인간은 불안의 늪에 빠진다. 예수 안에서 내가 용서받은 죄인, 하나님의 자녀, 천국 백성임을 자각할 때 우리는 확신과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다음은 푯대를 바라보고 달리기 위함이다. 푯대는 부활이다. 예수님은 불신 세상에 오셨다. 그래서 오병이어를 통해 만나를 주신 하나님을 믿게 하셨다. 바다를 꾸짖으시며 병자를 치유하시며 물길 위를 걸으시면서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이심을 몸소 가르쳐 주셨다. 죽은 자를 살리시며 부활이 있음을 제자들과 세상에 보여주셨다. 승천으로 휴거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시고 다시 온다는 재림의 약속을 믿게 하셨다. 바울은 부활을 이미 얻은 줄은 믿었지만 그 부활의 삶을 향해 달려갔다. 경주자의 삶을 살았다. 바울은 부활을 향해 가는 사람에게 뒤엣것을 잊으라고 명령한다(13절). 롯의 아내처럼 뒤돌아보지 말라고 한다. 쟁기를 가는 자가 뒤돌아보면 주님께 합당한 자가 아니다. 푯대를 보고 앞을 향하여 가라고 한다.

예수님 때문에 세상을 버릴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부활의 푯대가 있는 사람은 어떤 난관도 극복한다. 부름의 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경주자의 삶을 산다.



오늘의기도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주님, 세상을 뒤돌아보지 않게 하시고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며 경주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심상효 목사/대전성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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